목공을 배우기 전까지만 해도 ‘끌’이라고 하면 조각가들이나 쓰는 도구 정도로만 생각했다. 
망치처럼 집집마다 하나쯤 구비해 두는 공구도 아니고, 막상 살아가면서 접할 일도 거의 없는 도구라서 솔직히 이름만 알고 있었던 수준. 
그런데 막상 목공을 배우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사용빈도가 높을 뿐 아니라, 끌질이라는 행위가 상당히 매력 있다!

아무리 정밀한 기계로 가공을 해도 마지막 한 끗을 다듬는 일은 결국 내 손으로 직접 다듬어야 하는 게 보통인데,
트리밍 후 코너를 다듬는 다든지, 장부 맞춤을 하려고 파 둔 접합부를 수정하는 일 등에서 이제 자연스레 끌을 찾게 되는 내가 되었다.

 

‘끌’이라고 하는 도구에 대해서 좀 찾아봤다. 
이름도 꼴랑 한 글자인 ‘끌’ 이라서 뭔가 단순할 것 같았는데, 종류도 다양하고 각각 용도의 차이도 크다.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벤치 끌/평끌(Bench Chisel).

말 그대로 범용으로 사용하는 끌이라 생각하면 된다. 
장부를 다듬거나, 홈을 정리하거나, 망치나 말렛으로 두드려 사용하는 작업까지 대부분의 목공 작업을 소화하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 

그리고 장부 맞춤에서 암장부(Mortise)를 파내기 위해 두껍고 강하게 만들어진 모티스 끌/장부홈 끌(Mortise Chisel),
긴 날을 이용해 표면을 얇게 밀어내는 페어링 끌/마무리 끌(Paring Chisel),
제비꼬리 맞춤을 위한 도브테일 끌(Dovetail Chisel),
경첩 등을 설치할 때 사용하는 버트 끌/경첩 끌(Butt Chisel) 등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물론 그에 앞서 제작 지역과 방식에 따라 동양식과 서양식으로도 나뉜다. 

동양끌은 일본식(木工鑿, 노미)이나 한국식 끌처럼 단단한 강철층과 연철을 접합하는 적층 구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날이 매우 예리하고 절삭감이 뛰어나지만 관리와 연마에 어느 정도 경험이 필요한 끌. 

서양끌은 대부분 하나의 공구강(A2, 01, PM-V11 등)으로 제작되고, 구조가 단순하고 관리가 쉬우며 말렛을 이용한 작업까지 폭넓게 사용할 수 있어 현대 목공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식이다. 

 

이번에 내가 구입한 제품들은 바로 우드페커스(Woodpeckers)에서 제작한 서양식 기본 끌, Bench Chisel 세트 되겠다.

 

Woodpeckers, OneTIME Tool® Collector’s Vault 9-Piece Bench Chisel Set w/Rack-Its

이번 제품도 우드페커스의 OneTIME Tool® 방식으로 제작/판매되는 제품. 
4주 정도의 프리오더 기간 동안에만 주문을 받고, 주문 수량만 생산하는 Made to Order 방식. 

5개짜리 세트와 4개짜리 세트, 두 제품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각각을 따로 주문하거나 9종을 모두 주문하도록 예약을 받았는데 나는 나중에 어떻게 쓸지는 모르지만 일단 9종 풀셋으로 구입을 해봤다. 

이미 공식 사이트에서 이 벤치 끌 세트는 오더가 마감되었고, 지금은 다시 Mortise Chisel 6종 세트를 예약받는 중. 
물론 나는 그것도 프리오더를 넣어버렸다. 
내가 그걸 쓸 일이 있겠냐마는.. 

 

source : woodpeckers

Woodpeckers, OneTIME Tool® Collector’s Vault Chisel Schedule

우드페커스는 OneTIME Tool® Collector’s Vault 라는 이름으로 약 4년에 걸쳐 끌 시리즈 전체를 순차적으로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내가 구입한 Bench Chisel 세트는 이미 지나가 버려서 이 스케줄에는 나와있지는 않지만, 다 모으면 어마어마한 컬렉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끌 시리즈는 Blue Spruce Toolworks 와 함께 제작을 했다고 한다. 
지난 라우터 플레인(Router Plane) 포스팅(링크)에서 언급했듯 2019년 Woodpeckers가 Blue Spruce를 인수하면서 사실상 두 회사는 같은 회사라고 볼 수 있다. 
기본적인 제품의 구조나 시스템은 같지만 브랜드 성향에 맞게 제품을 만드는 재료나 컬러만 살짝 다르게 제작되곤 한다. 

이번 끌 세트 역시 날(Blade)은 Blue Spruce가 맡고, 전체적인 시스템과 핸들은 우드페커스가 새롭게 설계했다. 
Blue Spruce는 2005년부터 이상적인 끌을 만들기 위한 개발을 이어왓고, 2019년에는 자체 연삭/폴리싱 설비를 구축하면서 끌 뒷면의 높은 평탄도로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1/8″ – 1/4″ – 3/8″ – 1/2″ – 5/8″ – 3/4″ – 1″ – 1-1/4 – 1-1/2″

우드페커스의 레드 컬러 핸들과 반짝이는 날. 
사진의 날은 좀 누렇게 보이지만, 그건 배송 오면서 날을 보호하기 위해서 해둔 코팅제가 발라져 있어서 그렇다. 
실제로는 거울처럼 폴리싱 되어있는 엄청나게 예리한 날이다. 

Blue Spruce는 이중 열처리(Double Tempering)와 심랭 처리(Cryogenic Treatment)를 거친 A2 공구강을 사용하여 엄청나게 뛰어난 내마모성과 긴 날 유지력을 목표로 이 날을 제작하였으며, 구입해서 별도의 사전 작업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된 프리미엄 날로 만들었다고 한다. 

 

 

OneTIME Tool®이라서 뒷면에는 2026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뭔가 한정판 같은 느낌이 빡!

결국 저 부분은 망치로 엄청 쳐야 할 텐데.. 
이러다 실제 사용할 끌 세트를 따로 또 사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손잡이는 일반적인 끌에 사용하는 원형이 아니라 8각형(Octagonal) 단면을 채택했다. 
손 안에서 날 방향을 쉽게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하는데, 덕분에 날의 방향을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정렬하기 쉽고, 작업대 위에서 굴러떨어질 일도 거의 없을 것 같다. 
목공 하기 전에 상상하던 끌은 날 자체가 날카롭다기보다는 망치로 뒤를 때려서 쪼아내는(?) 석공의 끌이었는데, 실제로 목공방에서 끌을 다뤄보니 스치기만 해도 손이 베어버릴 정도로 예리함을 유지하는 도구라서, 보통 작업대 위에 올려둔 끌 위로 손이 지나가다가 베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그런 끌의 손잡이가 6각형이라면 굴러떨어지는 걸 잡다가 다칠 일은 일단 확실히 없겠구나.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손잡이를 쉽게 분리할 수 있다는 것. 
위의 사진처럼 손잡이와 날 사이의 깔때기형 부품을 돌려 빼면 렌치로 분리할 수 있는 구조다. 
나중에 날이 무뎌져 연마를 하게 될 때, 날만 분리해서 할 수도 있겠다. 

 

본래 두 개의 세트로 나눠서 제작된 만큼 Rack-It 시스템도 두 개로 분리되어 있다. 

ㄷ자 금속으로 만들어져 위쪽은 끌의 목 부분을 끼우고, 원형 홀이 뚫린 아래쪽에 뒤쪽을 끼우도록 되어 있는데…
뭔가 쉽게 빠지고 불안하다. 
기존의 다른 Rack-It들은 아, 이렇게 정리해 두면 넣었다 뺐다 사용하기 너무 편하겠다.. 느낌이 들었다면.. 이건 좀 낯설다. 
뭔가 내가 잘못 이해를 하고 있는 걸지도. 

갑자기 떠오른 개인적인 바램이라면,
4년에 걸쳐 출시되는 모든 OneTIME Tool® Collector’s Vault Chisel 들을 전부 사 모은 다음에, 
한 번에 정리해서 끼워둘 수 있는 엄청나게 멋진 랙을 제작하는 것.

지금은 엄두도 안 나지만, 4년 후라면 나도 목공 기술이 어느 정도는 늘어 있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