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소 애정하고 즐겨 입는 브랜드, Thom Browne(톰 브라운).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워낙 유명한 브랜드이고, 나 역시 그 독특한 스타일에 끌려 꽤 오래전부터 꾸준히 다양한 아이템을 사 입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건달들이 일수가방에 쫄쫄이와 함께 매치한 일명 ‘일수 가방 짤’ 때문인지 브랜드 이미지가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
하지만 그런 대중적 이미지와는 상관없이, 톰 브라운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확고한 아이덴티티 위에서 전 세계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는 거대 브랜드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지난 2월 초쯤이었나. San Francisco Legion of Honor 박물관에서 진행된 ‘Thom Browne Fall 2026 Runway Show’에서 갑자기 ASICS(아식스)와의 협업 스니커즈가 공개됐다.
평소 같았으면 아식스에 큰 관심이 없었겠지만, 작년부터 운동을 시작하며 아식스라는 브랜드에 완전히 관심이 생겨버린 상태.
요즘 PT 받을 때는 GEL-Kayano 14를,
집에서 트레드밀 할 때는 Gel-Nunobiki를,
바깥에 운동하러 나갈 때는 아식스의 ‘Novablast 5’ 를 주로 신고 있다.
그 외에도 선물 받은 Tarther 시리즈 까지..
신어보고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작년에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로 사준 것만 다 합치면 족히 10켤레 이상은 되는 것 같다.

source : thom browne
나는 아식스의 디자인이 예뻐서 이렇게 사 모은 건 아니다.
사실 냉정히 말해 지금도 별로 예쁜 줄 모르겠고..
지난 CdG SHIRT x ASICS, Gel-Nunobiki (링크) 포스팅에 썼듯, 그저 PT 선생님의 추천으로 처음 신어본 ‘운동화’로서의 아식스가 그만 너무 편해서 그 이후로 운동용 신발은 전부 아식스로 구입하고 있는 것.
그런데 이 협업이면 뭔가 기대가 될 수밖에.
아식스의 독보적인 기능성에다가 톰 브라운의 디자인이 끼얹어지면, 드디어 예쁘기까지 한 아식스가 나오나?? 하는 기대감 때문에.

source : thom browne
쇼에서 처음 등장한 모습은 나름 스타일리시해 보이긴 했지만, 솔직히 대단히 예쁘다는 느낌까지는 아니었다.
기존의 아식스 Gel-Kayano 14와 디자인적으로 크게 다를 게 없었으니까.
다만 그레이 컬러의 경우에는 톰 브라운의 상징적인 컬러이기도 하고, 복잡하게 생겨먹은 아식스의 디자인이 덜 도드라져 보여서 ‘그나마 낫다’ 싶은 정도.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이렇게 내 손에 들어오게 됐다.
딱히 구매할 생각이 크지는 않았는데, 현대 백화점 톰 브라운 매장에서 굳이 먼저 예약을 해준다는 연락을 줘서..
에이 잘 모르겠고 일단 걸어두자.. 하는 생각으로 말해 두고 잊고 있었는데, 결국 엊그제 받아왔다.

Thom Browne x ASICS, GEL-Kayano™ 14
우선 패키지부터 좀 짚고 넘어가야겠다.
톰 브라운의 슈즈 케이스에 아식스 로고가 추가된 형태를 기대했는데, 결과물은 아식스 상자에 톰 브라운 로고가 들어간 모양새.
한마디로 상자가 너무 허접하다.
묵직하고 탄탄한 회색 톰 브라운 박스를 기대하며 쇼핑백을 열었는데, 번쩍거리는 일반 운동화 박스가 튀어나와서 좀 실망스럽.


박스를 열면 구멍이 숭숭 뚫린 신발주머니가 보이고, 그 아래로 톰 브라운스러운 스트라이프 속지에 스니커즈가 얌전히 덮여 있다.

오!
다행히 실물이 온라인상에서 보던 이미지보다는 좀 낫다.
그레이 컬러가 온라인 사진상으로는 밝기가 제각각이라 감이 안 왔는데, 실제로 보니 꽤 묵직하고 어두운 톤이라 마음에 든다.
구성품으로는 메시 소재의 신발주머니 외에 여분의 슈레이스 한 쌍이 포함되어 있다.

신발도 신발인데, 난 이 신발주머니가 마음에 드네.

톰 브라운의 시선으로 재해석된 아이코닉한 아식스의 젤-카야노 14.
매장의 매니저님 말에 따르면 그레이 컬러가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한다.
중간에 화이트나 블랙으로 변경하면 좀 더 빨리 받을 수 있다는 제안도 받았지만, ‘톰 브라운=그레이’라는 공식 때문인지 그레이가 아니면 살 이유가 없었다.

source : thom browne
화이트와 블랙은 앞쪽 슈레이스를 잡아주는 부분에 톰 브라운의 삼색 시그니처 스트라이프로 되어 있는데, 그레이는 그냥 솔리드한 회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시선에서 가장 톰 브라운스러운 컬러는 역시나 그레이 컬러.
톰 브라운의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Grey(회색)’.
1950년대 미국 비즈니스맨들의 획일화된 복장에서 착안해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컬러로 회색을 낙점했고, 옷은 물론 매장 인테리어와 가구까지 회색 톤으로 통일해온 브랜드니까.

내가 현재 운동할 때 신고 있는 젤-카야노 14와 비교하면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예전 후쿠오카 여행 때 사이즈 있는 걸 대충 집어 오느라 금박이 섞인 촌스러운 컬러를 신으면서 정이 참 안 갔는데,
이번 협업 모델은 같은 제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세련된 맛이 있다.
(물론 그럼에도 신발 자체가 미친 듯이 예쁘다는 생각까진 안 든다.)

디테일을 살펴보면,
인솔에는 톰 브라운 특유의 스트라이프가 들어가 있고, 양발에 각각 톰 브라운과 아식스 로고가 따로 새겨져 있다.

통통한 설포(Tongue) 뒷부분에는 조그맣게 톰 브라운 네임태그 디테일이 박혀있다.


기본적으로는 스웨이드와 메시 재질이 여기저기 혼용되어 있는데. 중간중간 섞여있는 반사 디테일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원래 젤-카야노 14에 있는 디테일이라고 하더라도 여기서는 그런 건 좀 빼도 될 거 같은데.
이 신발을 ‘운동화’로 신고 야간 러닝을 뛰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그나마 신발 힐탭에 적용된 삼색 그로그랭(Tricolor Grosgrain) 루프 탭은 확실한 존재감으로 포인트가 된다.

안정적인 착화감을 제공하는 GEL™ 테크놀로지가 적용된 아웃솔.
(고무 48%, EVA 34%, 열가소성 소재 9%)
신었을 때의 편안함은 정말 아식스를 이길 자가 없다.
여행 갈 때 노바 블라스트 신고 가서 돌아다니면 하루 종일 몇만 보씩 걸어 다녀도 발이 안 아플 정도.
노바 블라스트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젤 카야노 14도 꽤 오래 신어본 결과 너무너무 편한 신발이기 때문에, 앞으로 여행 갈 때는 무조건 이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굉장히 잘 신어서 본전을 뽑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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