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도쿄로 가족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지난번에 다녀보니 아이들이 이제 많이 커서 같이 다닐만하다.. 싶어서 얼른 또 계획을 잡았는데, 역시나 좋았다. 
어쩌다 보니 골든 위크 때에 맞춰 가게 되어 식당 등이 문을 닫은 곳이 많은 점, 그리고 어딜 가나 여행객들로 바글바글 거린 점을 제외한다면 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잘 지내다 온 기분 좋은 여행이었다.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마땅한 비행기표가 없어서 일본으로 나갈 때는 오랜만에 나리타 공항으로 입국을 했다. 
아이들에게 경험도 시켜줄 겸 기차를 타고 도쿄역으로 왔는데, 지하철을 포함해서 기차를 처음 타본 우리 딸도 신기하고 즐거워했지만 나 역시도 기차 타본지가 꽤나 오래된 것 같네. 

 

오랜만에 내려본 도쿄역(東京駅)인데다가 날씨가 화창해 도쿄역의 마루노우치 역사가 더더욱 예뻐 보였다. 
일본 근대 건축의 거장인 다쓰노 긴고(辰野金吾)가 설계했다는데, 붉은 벽돌과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이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더욱 돋보인다. 

 

오테마치(大手町)에 있는 호텔까지 택시를 타려다 지도를 보니 이 날씨에 이 정도 거리면 걸어가는 것도 좋겠다 싶어 걸어서 이동했다. 
원래 같았으면 절대 택시를 탔겠지만, 작년부터 걷기와 뛰기에 나름 익숙해진 나와 슈이는 당연하고 아이들도 이제 꽤 잘 따라 걷는다. 

날도 맑고 바람도 선선한 데다가 짐을 최대한 가볍게 들고 왔더니, 비행 직후임에도 1-2km 정도는 걷는 게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숙소는 호시노야 도쿄(Hoshinoya Tokyo/ 星のや東京). 

호시노야를 처음 가본 건 2011년 2월 호시노야 가루이자와로의 여행 때. 
어려서부터 수없이 많은 일본 여행을 다녔지만 지금껏 가장 좋았던 일본 여행을 꼽으라면 바로 2011년의 가루이자와 여행이다. 
아무래도 그 기록을 한 기억이 있는 것 같아서 찾아보니 다 지나서 짧게 기록한 글(링크)이 있긴 있네. 

 

네 명 가족의 여행 계획을 잡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네 명이 같이 묵을 수 있는 호텔의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은데, 이곳은 아마 그중에서 가장 훌륭한 선택지일 수 있겠다. 
화장실이 한 개인 건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넓은 방에 꽤 널찍한 식탁과 낮은 개인 침대들이 있고 입구와 침실 쪽에서 모두 연결되는 드레스룸까지 굉장히 잘 정돈된 구조라서 생활하기가 꽤 편하다. 

물론 가장 큰 특징은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독특한 형태의 호텔이라는 점, 
그리고 각 층마다 위치한 투숙객 전용 오차노마 라운지에서 다과와 음료를 마음껏 즐길 수 있고, 
17층에는 위치한 하늘이 보이는 노천탕을 포함한 온천 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하루 일과를 끝내고 함께 올라가 뜨끈한 물에 몸을 담글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큰 장점일 수 있겠다. 

 

방에서 입는 잠옷과 별개로 기모노가 비치되어 있어, 건물 내부에 어디든 입고 다닐 수가 있는데 그 역시 여행객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경험. 

호시노야 도쿄의 조식은 지하 1층에 위치한 멋지고 프라이빗한 레스토랑에서 즐길 수 있다. 
그중에서 우리는 일본식 조식을 선택했는데, 장인이 만든 식기들에 담겨 제공되며 각 지은 쌀밥과 구운 생선, 제철 식재료들을 활용한 다양한 반찬과 된장국이 포함된다. 

개인에게 제공되는 작은 간장병이 너무 귀엽고 예뻐서 구입해 볼까 하고 긴자의 매장에 갔었는데 호시노야에서 본 투명한 제품은 없고 전부 무늬 있는 것만 있어서 구입하지 않았다. 

 

큰 계획 없이 온 데다가 골든위크 기간이라 맛집들이 꽤 많이 문을 닫아, 즉흥적으로 여기저기 알아보며 식사를 했는데, 뭐 나름의 재미는 있었지만 너무 맛있게 먹은 건 없다는 건 함정. 

 

전에 오모테산도에서 갔던 AFURI의 기억이 좋아서, 느지막이 야식을 먹으러 유라쿠초(有楽町)의 AFURI에 갔는데 줄이 얼마나 길던지.. 꽤나 오래 기다렸다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오래 기다린 만큼 맛있게 먹고 나왔지만.. 

유쥬 시오 라멘(Yuzu Shio Ramen)이 가장 유명한 것 같지만, 지난번도 그렇고 이번에도 역시 난 매운 라면을 먹었다. 
차슈 덮밥과 함께.

 

아무래도 긴자에서 시간을 가장 많이 보냈던 것 같다. 

이토야도 가고, 소바도 먹고, 스시도 먹고, 아디다스도 가고, 커피도 마시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사람이 좀 많기는 했지만 휴일이라 차도를 모두 막고 편하게 걸어 다닐 수 있었던 데다가, 일단 여행 내내 날씨가 너무나 좋아서 걸어 다니기에 너무너무 좋았다. 

 

유퀴즈에 나와서 화제가 되었다는 ‘문경환’ 셰프가 운영하는 스시집에서 식사를 했다. 

정확히는 문셰프님의 선배가 하는 긴자 스시 이시야마(いしやま)에서 팝업식으로 잠깐 하시는 거고, 조만간 시바 공원 근처에 가게를 내실 예정이라고..
물론 슈이가 알아보고 예약을 한 거고, 나는 유퀴즈를 못 봐서 셰프님 자체를 처음 뵙는 거였지만, 일본 땅에서 한국어를 하시는 셰프님이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니 아이들과 함께 더더욱 맛있게 스시를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스시로 별을 품다’라는 책도 쓰셨다던데,
(한 손님이 그 책을 가져와서 사인을 받으셔서 알았다)
미스터 초밥왕을 보고 요리를 시작해 책 제목처럼 초밥의 본고장인 일본 도쿄에서 미슐랭 1스타를 획득했다고 하니 엄청난 분인 건 확실한 것 같다. 

이번 식사에서 가장 맛있었던 건 다금바리와 전갱이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처음 맛본 고래 스시. 
고래고기 자체가 처음이라 좀 걱정스러웠는데, 뭐 나름 나쁘지 않았다. 

 

특별히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중학생 아들이 보고 싶다고 해서 오랜만에 가본 오다이바(お台場). 

이 실물크기 유니콘 건담을 본다고 가긴 했지만,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딱 다이바 시티 도쿄 플라자만 살짝 들렀다 왔는데도 기가 빨려서 숙소에 돌아와서 꽤 드러누워 있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변신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지만, 변신이래봐야 고작 뿔 정도 살짝 움직이고 마는 것 같아서 안 보고 돌아왔다. 

 

5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골목을 포함해서 여기저기 걸어서 이동을 많이 했더니 가족들과의 추억이 대부분 길거리에서 만들어졌다. 
초록색 횡단보도 신호를 보고 뛰었던 기억,
다 같이 까불까불하며 밤거리를 걷거나 멀리뛰기를 한 기억, 
맛없는 길거리 음식을 사 먹은 기억 등.. 

슈이가 들고 다닌 액션캠에도 전부 걷는 영상만 찍혀있다더니.. 나 역시 핸드폰에 그냥 거리 사진이 제일 많다. 

언젠가는 아빠랑 엄마 따라서 오는 여행보다 친구들과 다니는 여행이 재미있어질 때가 오겠지만, 대단한 목적 없이 이렇게 가족끼리 깔깔대며 거리를 걷던 이런 소소한 여행이 너무너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