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으로 라스베이거스(Las Vegas)가 뭐 썩 잘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이전 라스베이거스 여행들이 꽤나 기분 좋은 경험이었던 터라 내가 좀 우겨서 고르게 된 여행지이다.
애들 방학 기간에 맞춰 여행 일정을 잡다 보니, 엄청나게 더운 7월 말~8월 초에 사막 한가운데로 가게 되어버렸는데,
다녀온 입장에서 결론적으로는 한국의 올해 여름 날씨가 조금 더 힘든 것 같다.
라스베이거스는 너무 뜨거워 온풍기를 틀어놓은 것 같은 더위이긴 하지만, 적어도 습도는 낮으니까.

 

라스베이거스는 정말 오랜만이다.
아마도 슈이랑 결혼 전에 와서 그랜드캐니언(Grand Canyon)을 둘러봤던 게 마지막인 것 같으니 대략 15년은 됐을 듯.
아무래도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여행지를 정하더라도 라스베이거스를 고르게 되지는 않으니 오고 싶어도 순위에서 늘 밀렸고,
중간에 CES 같은 행사를 핑계로 몇 번 시도했다가 코로나 이슈로 좌절되곤 했었다. 

 

처음 라스베이거스에 방문했던 건 1995년.
너무 연식이 드러나는 과거 기록이지만, 대학생 때 지금은 없어진 컴퓨터 박람회인 ‘컴덱스(COMDEX)’를 관람하러 왔었더랬다.

공항에서 차를 렌트해 스트립(The Strip)에 들어서는데,
와… 정말 엄청나다!

호텔들의 규모도 커졌고, 전에 왔을 때에 비해 발전된 디스플레이 시장 덕분인지 휘황찬란한 사인물들이 대낮임에도 번쩍번쩍 난리가 났다.

 

어차피 너무 더울 예정이라 스트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맛집이나 다니고 공연이나 보자는 게 이번 여행의 컨셉.
그래서 호텔 근처에서 버거, 피자, 스테이크, 타코, 파스타 등 이것저것 마구 사 먹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너무 만족스러웠다. 

 

물론 아무리 무계획 여행이라지만 딱 두 가지는 미리 계획을 하고 왔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시르크 뒤 솔레이(Cirque du Soleil) ‘O’ 쇼.

영화 ‘오션스 일레븐(Ocean’s Eleven)’의 배경이기도 하고, 분수쇼로 유명한 벨라지오(Bellagio) 호텔 & 카지노 전용 극장에서 선보이는 물 테마 쇼다.
사실 나도 그렇고 슈이도 서커스류 공연을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아이들이 궁금해할 수도 있으니 가장 대표적인 쇼 하나는 보자… 라는 생각으로 예약해 관람했지만, 역시나 우리 아이들 또한 대단히 재밌게 보지는 않은 듯하다. 

 

그리고 미리 계획했던 또 한 가지는 바로 스피어(Sphere).
사실 라스베이거스에 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심지어 대부분의 일정을 아리아 리조트 & 카지노(Aria Resort & Casino)에 묵었지만,
도착하자마자 앞선 이틀은 단지 스피어 관람을 위해 베네시안 라스베이거스(The Venetian Las Vegas)의 ‘Sphere View’ 룸에 묵었다!

 

베네시안에서 머문 이틀간 호텔방 창문을 가득 채운 스피어로 정말 다양한 컨셉의 디스플레이를 보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수박.
미러볼이 반짝이는 것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게을러서 전부 영상에 담지는 못했다.

 

아리아 리조트 & 카지노의 스카이 스위트 펜트하우스(Sky Suites Penthouse)를 스트립 뷰(Strip View)로 잡았는데, 시설도 뷰도 어마어마하다.
앞서 묵었던 베네시안이 조금 올드한 느낌이라면, 아리아는 현대적이고 밝아서 묵는 내내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두 개의 거실 바닥이 모두 대리석이라 카펫을 싫어하는 슈이도 좋아할 만한 요소.

숙소가 53층이라 스트립 남쪽부터 해리 리드 국제공항(Harry Reid International Airport)까지 한눈에 다 보여서, 굳이 더 스트랫(The STRAT, 구 스트라토스피어 Stratosphere) 전망대에 올라갈 필요도 없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코스모폴리탄(The Cosmopolitan)에도 에그슬럿(Eggslut)이나 시크릿 피자(Secret Pizza)가 맛있어서 사다 먹기 좋다. 

 

길 건너면 바로 코카콜라(Coca-Cola)와 M&M’s 스토어가 있어서 밤늦게까지 돌아다니기도 좋다.
룰루레몬(lululemon) 매장도 크게 있어서 운동복도 몇 벌 사고(심지어 룰루레몬은 아리아 2층 피트니스 센터 가는 길에도 일부 판매하고 있음).

 

와… 내가 이제 여행지에서 운동까지 하는구나.
운동한다고 집에서 운동복이랑 운동화까지 챙겨가 꽤 여러 번 운동하러 내려갔다.

 

중간에 후버댐(Hoover Dam)에도 잠깐 다녀왔는데,
첫째가 어릴 때 ‘트랜스포머(Transformers)’ 1편을 워낙 좋아했어서 그 배경이라고 하면 좋아할 줄 알았더니 막상 큰 관심이 없다.

나는 어릴 적 처음 왔을 때 굉장히 감동적이었는데…
당시에 엄청난 공법으로 지어졌고, 어마어마한 콘크리트가 사용됐고..  뭐 주절주절 설명을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ㅋㅋ

 

아리아 1층에는 대만의 딤섬 가게인 딘타이펑(鼎泰豐/Din Tai Fung)이 있다.
주문 양 조절 실패로 너무 많이 시켜서 배 찢어지게 먹고도 남겼다.

 

아리아와 코스모폴리탄 사이에 위치한 뮤지엄 오브 일루전스(Museum of Illusions)에도 가까우니 슬쩍 가서 꽤 오랜 시간 놀다 오고,
데이브 앤 버스터스(Dave & Buster’s)에 가서 아이들과 오락도 질리도록 했다.

라스베이거스, 생각보다 아이들이랑 와도 괜찮네?

 

돌아오는 날 방문했던 타케리아 카사 델 사보르(Taqueria Casa Del Sabor).
가족 모두 타코를 좋아해서 이것저것 잔뜩 시켜 먹었는데, 이 집은 타코도 타코지만 고기랑 치즈 잔뜩 들어간 나초가 진짜였다.

 

큰 계획 없이 미국 도시에 와서 그날그날 근처 돌아다니다가 뭐 먹을지 정해서 먹고,
뭐 하고 놀지, 어디 갈지 그때그때 정해서 움직이는 이런 여행도 난 참 좋다.
물론 아이들이 좀 커서 가능해진 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