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얼마 전에 딸아이와 단둘이서만 제주에 다녀오게 되었다.

아무래도 제주에 집이 있으니 주변 다른 친구들보다는 제주에 훨씬 더 많이 가서 오래 머물러 보기도 한 우리 아이들이지만, 
나와 딸 단둘이 가는 제주는 처음.

여러 볼 일이 있었지만, 가는 김에 처리할 볼일들을 모아모아서 루이비통 이벤트 날짜 쪽으로 스케줄을 맞춰 네 가족의 여행을 계획했었는데, 
중학생의 학사일정은 초등학생에 비해 그리 자유롭지 못하더라. 
큰 아이만 집에 두고 갈 수는 없으니 당연히 혼자 다녀와야겠거니..생각하고 있던 참에,
딸아이가 따라서 가고 싶다네? 

그렇게 갑작스레 구성된 둘만의 여행. 
대단할 것 없는 짧은 여행이지만, 둘만의 첫 여행이니 일기처럼 간단하게 기록은 해두기로.

 

딸아이 학교 마치고 출발하느라 좀 늦기도 했고,
라면도 못 끓이는 아빠를 따라왔기 때문에 저녁을 먹고 들어와야 해서 제주 집에 도착하니 이미 상당히 늦은 시간. 
안 그래도 둘 만 와 있는 상황이 생소한데, 앞도 안 보이게 안개가 끼어있는 안개인지 구름인지가 동네 전체를 가득 메운 모습이 너무 낯설다. 

 

다음 날 눈을 떠 보니, 어제 앞도 안 보이던 안개는 어디가고 화창하고 깨끗한 날씨.
이런 날은 동네에 있는 베이커리 카페 중 최애인 ‘홀츠(Holz)’에 가야지! 

오늘은 서귀포에 있는 JW Marriott Jeju 에서 Louis Vuitton Savoir Rêver 행사에 초대를 받았기 때문에 하룻밤 짐을 챙겨서 차에 싣고 홀츠로 향했는데,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이른 시간임에도 이미 사람들이 바깥에서 여유롭게 브런치를 즐기고 있다. 

 

사람 사진을 빼고 올리려니 중간 과정이 상당히 생략되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간단히 브런치를 하고 서귀포로 내려오는데 서귀포 쪽은 비가 오고 있다.
맑은 날씨에 굉장히 들떴었는데.. 변화무쌍한 제주날씨. 
비 오는 제주도 물론 좋지만 JW 메리어트에 여러 번 묵었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날씨가 좋을 때가 훨씬훨씬 예쁘기 때문에 조금 아쉬웠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갔더니 재작년 Savoir Rêver 행사에 배정해 줬던 방과 완전히 똑같은 방! 
딸아이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더라. 

환영 메시지 카드와 함께 트렁크 모양의 초콜릿, 샴페인, 다과들을 잔뜩 준비해 주셨지만, 한창 입이 트인 내가 결국은 다 먹었다. 
아, 물론 샴페인 빼고.

 

원래 우리 가족이 그다지 활동적인 편은 아니라서 여러 번 다니면서도 몰랐는데,
JW 메리어트에는 숙박객들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이 꽤나 많이 있는 것 같다.
루이비통 담당 매니저가 예약 과정에서 여러 개의 체험 프로그램 중에 선택을 권하길래,
당연히 루이비통에서 진행하는 행사 중 일부겠거니.. 했는데 원래 호텔에서 하고 있던 프로그램들인 것 같더라. 

일단 여러 프로그램 중에 딸아이와 같이 했을 때 재미있을 만한 것을 고르다 보니 선택한 것이 바로,
Farm & Fire : Jeju Taco Lab Class.

제주의 봄 식재료로 간단히 타코를 만들어 보는 체험 클래스다. 
해산물 타코 두 개와 돼지고기 타코 두 개, 총 네 개를 만들고, 과카몰리도 직접 미니 절구를 이용해 만들어 볼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타코와 어울리는 데킬라 잔에 라임을 이용해 소금을 바르고 데킬라도 곁들이기까지.. 

 

Savoir Rêver 행사 사진은 생략하고.. 
수년째 여기저기서 진행하는 Savoir Rêver 행사를 가보고 있지만 역시 제주만한 곳이 없다. 
일단 공간이 워낙 크기도 커서 널찍하게 툭툭 만들어 둔 섹션들이 하나같이 멋있게 구성이 되어있어 눈이 즐겁다. 

 

저녁은 JW 메리어트 제주의 ‘여우물(Yeoumul)’에서 먹었다. 
항상 아일랜드 키친이나 플라잉 호그를 다녀서 막상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여우물. 

오마카세(お任せ) 집이라고 해서 당연히 일본식 스시 오마카세거나 가이세키(懐石) 코스를 하는 집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사실 딸아이가 일식을 좋아하는 편이라 여우물로 예약을 부탁했던 것.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전혀 아니네?? 

이곳은 제주 해녀와 어부들이 당일 채취한 신선한 해산물을 주재료로 하고 지역에서 자라는 제철 식재료들을 이용해 만드는 ‘맡김차림’ 집. 
맡김차림이 결국 오마카세이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 혼자 오해를 했네. 

 

소규모의 인원이 자리한 시간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평소에 늘 이런 과정을 거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여우물의 메인 셰프인 이대진 셰프님은 재료 하나하나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전래동화를 풀어내듯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곁들여 주셨다. 
초등학생 아이가 아빠와 둘이 와서 먹는 게 특이하게 느껴진 건지 셰프님이나 직원들은 물론 같이 식사하는 분들까지 너무들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아마 우리 가족에 어떤 사연이 있는 걸로 오해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여담이지만,
실제로 리조트 부지 내에 여우들이 물을 마시러 왔다는 천연 샘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샘물을 원래도 여우물이라고 불렀고, 호텔의 건축가인 빌 벤슬리(Bill Bensley)가 설화의 이미지를 재 창조해 메뉴 카드 등도 직접 관여해 만들었다고 한다. 플라잉 호그, 아일랜드 키친, 댄싱 두루미 같은 다른 공간의 이름들도 재미있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니 여우물이라는 이름이 더욱 정감이 간다. 

 

전체 메뉴의 사진은 아니지만,
어쨌든 식당이면 기본적으로 음식이 맛이 있어야 하니. 나름의 평가를 해보자면.

“새롭고 맛있다”

일단 그냥 먹는 거 좋아하는 비전문가인 내가 판단하기로는 기준이 애매하긴 하지만 여우물의 음식은 너무나 한식. 
전라도 한상차림 한정식집의 자극적이고 진한 맛을 기대하면 당연히 실망할 수도 있겠고,
일반적인 일식 가이세키 요리처럼 달고 짜지도 않다. 
전반적으로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린 슴슴한 맛이고, 잔뜩 먹고 나도 속이 참 편안하다. 

도달어(아마도 도다리 같은 친구인 거 같은데)가 들어간 쑥국은 술 안 먹은 내가 먹어도 시원했지만, 초등학생 딸아이도 거부감 없이 먹을 정도였는데, 그렇다고 쑥 향이 약한 건 아니라 대중적으로 잘 풀어냈다는 느낌? 
제주 흑우를 이용한 소고기 구이도 부드러우면서도 일반 소고기 구이와 달리 흑우 특유의 고소하고 진한 향미가 잘 느껴졌다. 

메뉴 하나하나가 굉장히 고민이 많이 담긴 맛과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들인 정성과 상관없이 한식답게 맛있다. 
조만간 시간을 내서 온 가족이 다시 방문하고 싶을 정도. 

 

다음날,
일찍 일어나 딸아이와 조식을 먹고 잠깐 올레길을 걸었으나 빗방울이 날려 조금 가다가 돌아왔다. 
바로 몇 달 전에 부모님과 같이 걸었던 코스여서, 장소 설명 없이 부모님께 사진을 보냈는데 배경만 보고도 어딘지 딱 알아채시더라. 

브런치 뷔페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고 산방산 근처의 ‘더 리트리브(The Retrieve)’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 
제주 갤러리 공사할 시즌에 참 많이 갔던 카페인데,
내 기억엔 분명히 노키즈 카페였던 것 같았는데 이번에 혹시나 하고 들렀는데 노키즈존이 아니네? 

예전에 비해서 커피가 좀 맹- 해진 게 아쉽긴 했는데.. 그래도 역시나 낡은 창밖의 초록이 너무너무 예쁘다. 

 

이건 어쩌다 보니 또 그다음 날. 

동네에 있는 보석 같은 레스토랑, 몰츠(Moltz). 
둘이 가서 피자 한 판에, 파스타 하나, 큼지막한 문어 샐러드까지 시켰더니 테이블이 보기만 해도 푸짐하다. 
물론 싹싹 다 먹었.

 

원래도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번 여행 과정을 느긋하게 하나하나 되짚어 봤다. 
평소 주방 쪽 과는 거리가 먼, 요리 관련된 일에 완전히 서툰 내가 딸과 함께 뚝딱거렸던 타코 클래스도, 
여우물과 아일랜드 키친, 홀츠나 몰츠에서 여유 있게 즐겼던 식사도 너무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포인트는 여행 내내 옆에서 끊이지 않고 킥킥대며 조잘거리던 딸과의 일상적인 시간. 

6학년은 사실 아빠보다 친구가 더 좋을 나이이고, 이르게 사춘기가 온 친구들은 아빠에게 안기는 일도 꺼려 한다고 주변에서 들었는데, 
갑작스럽게 결정된 여행에 기쁘게 따라나서 주고,
여행 동안 한 번 싫은 소리 없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늘어놓는 딸이 너무 예쁘고 고맙다. 

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자라는 아이들의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짧은 사진 한 컷을 남겨둔 것처럼 딸과 내 머릿속에 남았을 첫 제주여행. 
언젠가 아들과도 이런 여행을 떠나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아마 아들은 안 간다고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