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전시 관람을 위해 짧은 기간 도쿄에 다녀오기로 결정하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계획이 하나 있었다.
MBTI 검사를 여러 번 해봐도 늘 INFP가 나오는 나로서는, 여행 일정이 잡힌다고 해서 미리 예약을 하거나 계획을 짜는 일이 영 익숙지 않은데도, ‘이건 꼭 해야겠다’고 바로 떠올랐다는 게 스스로도 꽤나 놀라웠다.
그 계획은 바로 재즈 클럽 블루노트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것.
대단한 재즈 마니아는 아니지만, 요즘 혼자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은 거의 재즈고, 여러 아티스트들의 음반을 사 모으며 감상해온 연차도 제법 쌓이다 보니 이제는 나름의 호불호라는 게 확실히 생긴 정도.
블루노트 재즈 클럽(Blue Note Jazz Club)은 1981년 미국 뉴욕시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문을 연 재즈 클럽 겸 레스토랑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명성 높은 재즈 공연장 중 하나다.
현재는 하와이 와이키키, 캘리포니아 나파, 일본 도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 이탈리아 밀라노,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 등지에 지점을 두고 있다.
사실 2004년에는 우리나라에도 ‘블루노트 서울’이 오픈한 적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몇 달 만에 문을 닫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아마도 전반적인 준비가 부족했던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어릴 때는 청담동에 있었던 ‘원스 인 어 블루문(Once in a Blue Moon)’이라는 재즈 클럽에 자주 들르곤 했는데, 그곳마저도 2020년 11월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중단했다.
그렇게 나에게 재즈는 점점 CD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감상하거나, 좀 더 적극적이라면 블루레이 연주 실황을 감상하는 식으로 익숙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큰 기대 없이 ‘블루 자이언트(Blue Giant)’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만나게 된다.
타치카와 유즈루(立川 譲 / Yuzuru Tachikawa) 감독의 작품이고, 음악감독은 무려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서 공연했던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우에하라 히로미(上原ひろみ / Hiromi Uehara).
‘재즈계의 슬램덩크’라고도 불린다는 이 작품은, 솔직히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작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재즈에 대한 열정적인 표현과 태도, 그리고 작품에 가득한 라이브 연주 장면이 워낙 생생해 완전 몰입해서 감상하게 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그런데 작품 속에서 연주자들이 꿈의 무대로 생각하는 ‘SO BLUE’라는 재즈 클럽은 실제 ‘BLUE NOTE TOKYO’를 모티브로 삼아 재현한 공간이라고?
사실 단순히 이름만 바꿨을 뿐, 공간의 분위기와 상징성은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이라 ‘영감을 받아 설정된 무대’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그 이야기를 접하니 갑자기 그곳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이미지는 BLUE GIANT의 한 장면인데, 로고를 비롯해 건물의 외형부터 조명까지 완전히 BLUE NOTE TOKYO 를 그대로 그려내고 있는 모습.
어쨌든 그렇게 사전 예약을 통해 자리를 잡고, 일찌감치 도착해 식사를 마친 후 간단한 주류와 함께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내가 예약한 공연은
HARVEY MASON featuring GONZALO RUBALCABA & FELIX PASTORIUS
“Changing Partners / Trios 2” Vinyl Release Party
공연 중에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공연 전과 후 공연장의 분위기만 휴대폰 카메라로 가볍게 담아왔다.
아.. 정말 너무 좋은 공연이었다.
( ㅠ _ㅠ)
도쿄가 대도시는 대도시인가.
공연을 관람하던 관객들 중 서양인의 비율이 예상보다 훨씬 높았는데, 얼핏 보기에 절반 이상이 서양인처럼 느껴질 정도.
그리고 나머지 절반 정도 되는 동양인 관객들도 대부분이 멋진 중년이나 노년의 신사, 혹은 노부부였는데,
그중에서도 손을 꼭 잡은 채 샴페인과 함께 재즈 공연을 즐기던 한 노부부의 모습이 유난히 보기가 좋았다.
어쨌든 저분들은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굉장히 오랜 기간 이 취미를 즐겨온 거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일찍 선진국이 되어 발전한 일본의 문화산업이 부럽기도 하고,
열었다 몇 달 만에 폐업한 블루노트 서울이나, 경영난 때문에 문을 닫은 내 젊은 날 추억의 원스 인 어 블루문 생각에 서글픈 마음도 살짝 들었다.
어쨌든, 다음번에는 꼭 슈이와 같이 가봐야겠다.
슈이는 재즈를 특별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내가 가자고 하면 아마 기꺼이 함께 즐겨줄 것 같고,
흑인음악과 재즈를 좋아하시는 장모님과도 언젠가 꼭 한 번 함께 오고 싶다.
공연 후 현장에서 구입해 온 아티스트 사인 CD.
사실 내가 본 공연은 “Changing Partners / Trios 2” Vinyl Release Party 이기 때문에 Vinyl을 구입해 와야 하는 게 아닐까.. 했지만.
LP 모으는 취미는 없고 턴테이블도 없기 때문에 그냥 CD에 만족하기로.
아, 참고로 현장에서 판매하는 음반이나 굿즈들은 현금으로만 구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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