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뭘 하든 대단히 피나는 노력을 하거나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지만 꾸준함에 있어서는 꽤나 지독한 편인 나. 
애초에 입맛에 맞고 재밌는 일만 골라서 하다 보니 꾸준할 수밖에. 

수많은 취미생활 중에 정말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레고(LEGO)다. 
그리고 그 레고를 즐김에 있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형태는 MOC(My Own Creation)를 고민하고 만드는 일. 
최근에는 아무래도 어릴 때만큼 레고 창작에 시간을 쏟지는 못하고 있지만 LEGO에서 정식 출시하는 제품들 중 흥미롭고 인상적인 제품들을 꾸준히 구입해 조립하고 있다. 

 

정식 발매 제품들 중 LEGO IDEAS 시리즈는 그 이름만큼이나 단연 돋보이는 아이디어를 뽐내는데,
이번에 내 눈을 사로잡은 제품은 바로 ‘LEGO 21327 Typewriter(타자기)‘ 제품이다.

부품 수 2079개로 꽤 큼지막한 사이즈의 박스에 담겨 발매된 이 제품은 ‘타자기’가 주는 빈티지한 감성 때문인지 발표되자마자 올드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는데, 다행히도 레고 공식 홈의 VIP 회원들에게 선주문 기회를 제공하여 구입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저 타자기 제품을 딱 보자마자 내 머릿속에 떠오른 제품은 바로
2019년 여름에 덴마크의 ‘Design Museum Danmark’에서 봤던 Olivetti의 빈티지 제품(링크)이다.
어쩜 덴마크는 그 옛날에 저런 컬러를 쓰냐..

레고 그룹의 창시자 올레 키르크 크리스챤센(Ole Kirk Kristiansen)이 사용했던 구식 타자기를 본떠 제작되었다고 하니 어쩌면 진짜 Olivetti 제품일 수도 있겠다.

 

타자기의 키들은 전부 프린트 브릭.
스티커였으면 정말 실망할 뻔했는데 다행히도 스티커는 타자기 앞/뒤쪽에 하나씩 딱 두 개뿐.

 

키들은 실제로 하나하나 눌리도록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반복적인 조립과정이 숨어있다.
하지만 조립 난이도가 그리 높지는 않은 편이라 지겹게 느껴지지는 않는 정도.
(오렌지 주스를 옆에 두고 병나발을 불었더니 사진에 계속 걸리네)

 

스페이스 키까지 키들을 모두 끼우고 나면 키가 눌렸을 때 동작하는 부분에 대한 장치들에 대한 조립을 시작하게 된다.

앞쪽부터 차례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눈에 딱 보이도록 조립 순서가 잡혀있다 보니 인스트럭션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는 과정이 꽤나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조립할 수 있었다.

 

뒷부분 마감을 시작하는 중.
빈티지한 그린톤 컬러 브릭으로 매끈한 코너를 마무리 짓는 손맛이 꽤 좋다.

 

키를 누르면 실제 타자기의 움직임과 비슷하게 종이쪽으로 활자바(Typebar)가 튀어 올라감과 동시에 종이를 물고 있는 나르개(Carriage)를 좌측으로 이동시키는 모습을 구현한 장치.

굉장히 복잡하다.
설명서를 보고 만들기는 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서로 간에 밀고 당겨주는지 완성해서 끼워 넣기 전까지는 예측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완성된 타자기.

먹끈도 연결해 진짜처럼 뒤로 걸고 나니 빈티지한 진짜 타자기 느낌이 난다.

 

함께 들어있는 편지 책을 펼쳐보니 현 레고사의 회장인 ‘토머스 커크 크리스챤센(Thomas Kirk Kristiansen)’의 편지가 43개국의 언어로 쓰여져 있다.
위쪽은 깨끗하게 뜯어낼 수 있도록 점선 칼집이 나있는 점도 마음에 쏙 든다.

LEGO

덴마크 빌룬트, 2021년 7월

레고®팬 여러분께

팬 디자이너 Steve Guinness님과 레고® 아이디어 팀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이 세트를 여러분께 소개하게 된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의 증조부이자 레고의 창립자인 올레 커크 크리스챤센은 타자기와 전화기가 발명된지 불과 몇 해 후인 1891년에 태어났습니다. 아시다시피, 두 발명품 모두 커뮤니케이션의 혁신을 불러왔으며 전 세계적인 비즈니스 현대화에 크나큰 기여를 하였죠. 올레가 회사를 세우던 당시 그분의 책상 위에도 자신의 첫 번째 타자기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또한 1958년에 저의 조부인 고트프리트도 바로 이 세트에 사용된 레고 시스템 브릭의 특허 출원서를 꼭 이렇게 생긴 타자기로 타이핑했고요. 그 서류는 지금도 레고 하우스 히스토리 컬렉션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간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에도, 여전히 저는 오래된 타자기를 보거나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제가 어릴 때 할아버지와 저의 부친인 키엘이 사무실에서 일하시던 모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당시 저에게 타자기는 매우 흥미롭고 중요해 보이는 물건이었으며, 그분들도 저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나 비밀 메시지를 타자기로 쳐보게 해주셨죠.

저희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변함없이 미래의 세대에게 영감을 주고 능력 발달을 지원한다는 목표를 추구해 왔으며, 레고 팬 여러분과 레고 아이디어 디자이너들이 레고 브릭을 이용해 창의적 재능을 그토록 멋지게 표현해낸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세상을 다시 조립하기를 계속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토머스 커크 크리스챤센

일단은 키보드에 영문만 쓰여 있으니 가장 잘 어울리는 영어버전 편지를 뜯어 끼워보았다.
실제로 뒤쪽 롤러에 말아 끼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른쪽 노브를 돌리면 고무바퀴가 종이를 잡고 감아 준다.

종이까지 끼우니 더더욱 그럴듯해진 모습.

 

아 뭔가 올드한 감성이 물씬 나면서도 정감가는 민트 그린 컬러.

사진을 다 찍고 난 후 나중에 알게 된 건 저 활자바(Typebar) 끝을 꺾어 펼쳐두어야 한다는 것.
지금은 잘 펼쳐두었지만 다시 사진 찍기 귀찮으니 패스.

 

이 정도면 정말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
어느 한구석 허접한 곳이 없다.

 

유광 인쇄된 키들도 느낌이 꽤나 괜찮다.

 

최근 만들었던 10295 Porsche 911 제품도 꽤 손맛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취향 차이겠지만) 완성 후 만족도가 비교가 안된다.

타자기 압승!

 

아예 레고가 작정하고 빈티지 시리즈로 Dieter Rams(디터 람스) 디자인의 BRAUN 제품들도 내줬으면.
Bang & Olufsen 제품들 중 David Lewis(데이빗 루이스) 디자인들도 너무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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