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을 다녀왔다.
운동은 물론이고 아웃도어 활동 전반에 별다른 관심 없이 살아온 터라, 캠핑 역시 내겐 익숙지 않은 단어.

 

 

게다가 날씨는 예보와는 전혀 달랐다.
오후부터 비가 조금 올 거라더니, 실제로는 올해 들어 가장 쨍하고 파란 하늘.
해가 뜨거워 그늘 없이 몇 분만 서 있어도 등줄기로 땀이 흐를 정도였지만, 하늘만 보자면 최근 들어 가장 멋진 날씨였다.

십여 년 전 서울을 벗어나 판교에 살고 있지만, 평생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겐 여전히 자연이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특히 요즘 들어 식물이 좋고, 계절의 변화가 눈에 들어오고, 이름 모를 풀과 나무들을 가만히 바라보게 되는 걸 보면… 나이가 들긴 했나 보다 싶다.
왜 늘 주변에 있었던 것들이 이제야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그래도 정원이 있는 집에서 자랐고, 자연과 좀 더 가까운 환경의 제주에서도 꽤 머물곤 했으니
나보다는 조금 더 초록의 기억을 간직한 유년 시절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그럼에도 활동적이지 못한 아빠라는 점에서 가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 우리 아이들에게는, 다행히 에너제틱하고 추진력 넘치는 ‘큰아빠’가 있다.
우리 형은 나와 비슷한 점이 참 많으면서도 또 반대로 굉장히 계획적이고 추진력도 좋아, 무언가에 빠지면 제대로 즐기는 타입.
취미만 해도 캠핑, 낚시, 베이킹 등 얼핏 들어도 활동적이고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다.

게다가 조카들을 워낙에 예뻐하는 큰아빠이다 보니, 아이들은 출발 전부터 이미 최고로 들뜬 상태.
큰아빠와 함께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미 성공한 여행이었다.

 

원래 형은 좀 더 정석적이고 제대로 캠핑을 즐기는 타입이지만, 멤버도 멤버고 시기상 날씨가 더울 걸 감안해 이번엔 본격적인 캠핑 대신 아이들에게 조금 더 편한 ‘카라반 캠핑’을 준비했다.
형 말로는, 아이들이 어릴 때일수록 차에서 먹고 자는 낯선 경험이 오히려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고.
결과적으로는 정말 탁월한 선택! 아이들에게는 차+집이라는 사실부터 너무 신선했으니까.

 

우리가 다녀온 곳은 춘천에 있는 Out of Park라는 빈티지 카라반 캠핑장.
시설이 뭐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모든 게 더 새롭고 흥미로웠다.
처음으로 논두렁에서 개구리를 손으로 잡아보고, 평소 식탁에서나 보던 채소와 열매가 자라는 밭을 직접 둘러보고, 막대기를 끌고 흙길을 걷다 뱀이 벗고 간 허물을 발견하는 경험까지.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 하루 안에 마구 쏟아졌다.

 

저녁 바비큐 시간엔 날벌레가 너무 많아 음식에도 들어갈 정도였지만,
평소엔 날파리 한 마리에도 민감한 아이들이 절대 못 겪어 보던 그런 상황을 차츰 받아들이는 걸 보며
도시를 벗어난 시간이 얼마나 특별했는지를 실감했다.

 

우리 아들은 큰아빠에게 낚시를 배워, 직접 강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베스를 잡기도 했다.
나도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건데! 아들 손에 느껴졌을 첫 손맛이 어떠했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넷플릭스도 유튜브도 없이 그저 돌멩이 하나, 긴 막대기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잠시나마 경험할 수 있었던 게 너무 흐뭇했다.
사실 아이들뿐 아니라 나 역시 처음 접해 본 것들이 많아서, 그 하루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