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吉本ばなな).

어릴 때 지금은 내용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키친’을 읽고 나서 굉장히 좋아하게 되어 그녀의 작품들 여러 권을 줄줄이 사 읽었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제목이라면.. ‘도마뱀’, ‘암리타’, ‘하드보일드 하드 럭’, ‘하얀 강 밤배’, ‘하치의 마지막 연인’, ‘티티새’, ‘불륜과 남미’ 등등.
웹 소설을 제외하면 아마도 당시가 내 생애 가장 소설을 많이 읽던 시기인 것 같다. 

최근에도 ‘여행 아닌 여행기’, 그리고 ‘애틋하고 행복한 타피오카의 꿈’을 따로 사서 읽었을 정도로 그 관심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데 얼마 전 웹서핑을 하다가 반가운 소식을 보았다.

그녀의 작품 ‘데이지의 인생’을 애니화 하기로 했다는 것.

‘데이지의 인생’은 분명히 내가 종이책으로 구입해서 가지고 있었고 읽기도 했었는데 내용은 기억이 잘 나지 않더라. 
창고에 가서 책장을 뒤져봤더니 역시나 가지고 있었다.

 

요즘 두꺼운 책들을 몇 개 읽고 있어서 인지 오랜만에 창고 책장에서 꺼낸 얄팍한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은 뭔가 장난감 같기도 하다. 
내용이 뭐였더라? 하면서 잠깐 몇 페이지를 읽다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 작품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작가 ‘요시토모 나라(奈良 美智/Nara Yoshitomo)’의 그림들이 표지를 비롯해 중간중간 들어가 있다. 
한자로는 전혀 다르지만 한글 표기가 비슷해 요시토모/요시모토를 바꾸거나 잘 못 부르는 사람이 많은 이 두 작가를 나는 예전부터 좋아해 왔다. 

이모가 하는 식당에서 야키소바와 오코노미야키를 볶는 일을 하는 주인공 ‘데이지’. 
데이지가 철판요리를 하는 그림에서 보이듯 요시토모 나라만의 시크한 귀여움을 뽐내는 그림들이 소설 중간중간 눈을 즐겁게 해준다. 

 

가물가물한 내용을 기억해내려 펼쳤던 책을 어느덧 끝까지 후루룩 읽어버리게 되었다. 

다시 느끼지만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정말 너무너무 잘 읽히는 글.
늘 요시모토 바나나 작가 작품의 번역을 맡는 김난주 님의 능력인지 아니면 원고가 그런지는 일본어를 잘 몰라 확인이 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굉장한 매력이기도 하다. 

작품의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하고.

 

이 작품은 원제 ‘ひな菊の人生(히나기쿠의 인생)‘으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겐토샤(幻冬舎) 문고에서 연재되었던 작품. 
연재 당시부터 삽화는 ‘요시토모 나라’가 참여를 하였으며 이번 애니메이션에서도 나라가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한다고 한다. + _ +

각본은 사회 문제와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로 정평이 난 ‘타나카 사치코’가 집필을 맡는다고 하고 가장 중요한 애니메이션 제작은 ‘ame pippin’에서 진행한다고 한다.

그래서 ‘ame pippin’이 어딘데?? 하고 좀 더 찾아보니, ‘유아사 마사아키(湯浅政明/Masaaki Yuasa)’라는 유명 애니메이션 감독.
오, 조금 안심이 되는데?

그가 참여한 작품들을 간단히 살펴보면…

 

단다단 (ダンダダン/Dandadan)

넷플에 올라와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봤다가 쉬지 않고 쭈욱 달렸던 굉장히 흡인력 있는 작품. 
코믹+오컬트+SF ?? 장르를 분류하기가 애매하지만 어쨌든 신나고 재밌는 작품이었다. 
특히 난 사운드와 음악도 마음에 들던데.. 
확실히 연출이 시원시원하고 멋졌던 기억이라 비교적 잔잔하고 서정적인 ‘데이지의 인생’과 궁합이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실력은 입증되었다는 거..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 (四畳半神話大系)

아직 못 본 작품이지만 유튜브에 올라온 PV 영상과 이미지들을 보니, 확실히 단다단과 겹치는 느낌도 조금은 있는 것 같기도. 
어쨌든 이 작품도 상당히 독특한 작화와 색감이 돋보이네.

 

데빌맨 크라이베이비 (デビルマン Crybaby)

‘나가이 고(永井豪)’의 1972년작 데빌맨의 50주년 기념작으로 유아사 마사아키가 감독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 
역시나 난 아직 감상 전이다. 데빌맨 원작 자체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에 쉽사리 시작을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한번 접해봐야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2026년 개봉을 목표로 제작하는 ‘데이지의 인생’은 ame pippin 스튜디오에게도 첫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이며,
요시모토 바나나로 대표되는 일본의 문학,
요시토모 나라로 대표되는 일본의 시각 예술,
유아사 마사아키로 대표되는 일본 애니메이션 계까지 힘을 합치는 엄청난 프로젝트인 만큼 훌륭한 결과로 나와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