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을 하기 전에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시스테이너(Systainer).
목공을 시작한 이후로, 특히 목공을 위한 작업실을 계획하고 나서부터는 꽤나 많은 시스테이너를 갖추게 되었다. 

Festool 공구를 하나씩 구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이 대부분이고, 그 밖에도 바로 얼마 전 포스팅했던 TSO Products (링크)의 경우처럼 자사 제품을 시스테이너에 담아 판매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구입하면서 하나둘 더 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특정 공구를 구입했더니 그 안에 시스테이너가 들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시스테이너 자체를 사기 위해 Systainer USA 라는 곳에서 주문을 해봤다. 
국내로 직배송을 해주긴 하는데 Fedex나 DHL 같은 걸 이용하는 게 아니라 굉장히 과정이 더디고 복잡했지만, 어쨌든 결과물을 엊그제 받아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도 흔하디흔한 시스테이너를 굳이 거기서 산 이유는?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원하는 컬러 조합으로 시스테이너를 만들 수 있기 때문. 

 

내가 이번에 Systainer USA 에서 주문한 제품은 두 가지, 아니 정확히 네 개의 제품을 주문했다.

SYS-Aid M 137
Custom Systainer³ M 112 Anthracite + Deep Orange

그리고 그 안쪽

에 들어가는 인서트,
Systainer³ M Vaulted Lid Form
Systainer³ M Soft Base Form

이번에 주문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된 이 Systainer USA는 이름 그대로 미국에서 시스테이너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사이트. 
시스테이너 자체뿐 아니라 인서트, 레일, 카트, 각종 부품 등을 상당히 다양하게 취급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시스테이너의 컬러를 직접 조합해서 주문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M 사이즈의 경우 본체(Body), 상단 손잡이(Lid Handle), 전면 잠금장치(Catch)의 컬러를 각각 선택해 주문할 수 있다. 
본체만 해도 Anthracite, Light Gray를 비롯해 Black, Carmine Red, Daffodil Yellow, Deep Orange, Emerald Green, Sapphire Blue, Sky Blue 등 여러 컬러가 준비되어 있고, 손잡이와 Catch 역시 각각 별도의 컬러 선택이 가능하다. 

그래서 흔히 보던 Festool의 화이트/그린 조합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기 취향대로 시스테이너를 만들 수 있다. 
물론 나는 이 시스테이너 조차 그냥 한 톤으로 통일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여러 시스테이너 중 몇 개 정도는 좀 튀어도 좋지 않을까 해서 아주 소극적으로 한두 개씩만 추가를 해보고 있다. 

 

Systainer USA, SYS-Aid M 137

커스텀 시스테이너를 주문하러 갔다가 먼저 눈에 들어온 제품이 있었는데 바로 이 SYS-Aid. 
말 그대로 시스테이너로 만든 구급상자 되겠다. 
어차피 아뜰리에에 구급상자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다른 시스테이너와 함께 정리가 될 수 있으면서 눈에도 잘 띄는 이런 훌륭한 제품을 팔고 있다니.. 

가장 작은 SYS-Aid S 76 사이즈 부터 SYS-Aid M 337 까지도 판매가 되고 있었지만 나는 그럭저럭 적당해 보이는 M 137 제품으로 구입해 봤다. 
물론 ‘구급상자’가 목적인 제품이긴 하지만 내부에 응급처치 용품 같은 건 들어있지 않다. 

 

지난 TSO Products 포스팅에 이어 다시 등장한 TANOS. 

시스테이너라고 하면 아무래도 Festool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나 역시 가지고 있는 시스테이너 대부분이 Festool 제품을 구입하면서 함께 따라온 것들이라 오랫동안 시스테이너를 Festool의 전용 공구함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Systainer는 독일 TANOS GmbH가 개발하고 전개하는 모듈형 수납/운반 시스템. 

TANOS는 1993년 TTS Tooltechnic Systems의 자회사로 설립되었는데, 여기서 TTS는 Festool을 거느리고 있는 바로 그 그룹이다.
TANOS라는 이름 자체도 Transportation And Organisation System에서 만들어졌다.

1993년 첫 번째 Systainer Classic-Line이 등장했고, 2010년에는 전면의 하나의 레버로 잠금과 결합을 조작할 수 있는 T-Loc이 등장했다.
그리고 2019년 현재 사용되고 있는 3세대 Systainer³가 출시된 것.

그러니까 Festool의 공구함으로 익숙해진 형태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TANOS가 하나의 독립된 시스템으로 개발하고 여러 제조사가 공유해서 사용하는 산업용 플랫폼에 가깝다. TANOS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이미 전 세계에 판매된 시스테이너가 수천만 개에 이르고, 다양한 공구/장비 제조사들이 각자의 제품에 맞춰 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부분은 처음부터 단순한 공구함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서로 쌓고, 연결하고, 운반되는 하나의 시스템을 전제로 설계되었다는 점. 
정리벽이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상당히 위험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흰색과 빨간색 조합의 Systainer³ M 137에 구급상자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별도로 인쇄된 전면 Catch와 두 장의 First Aid 라벨 카드가 포함되어 있다. 

 

이 SYS-Aid의 컬러는 바로 Carmine Red. 

엇? 이거 아까 커스텀 컬러 중에 고를 수 있었는데? 
SYS-Aid용 구급상자 마크가 인쇄된 캐치도 별도로 판매를 하고 있으니, 결국 Systainer³ M 으로는 437까지 구급상자 조합이 가능하고, 
심지어는 Systainer³ XXL 337 까지도 구급상자로 커스텀이 가능하다는 이야기. 
XXL 337 사이즈가 337mm x 792mm x 296mm 니까. 이동식 약국 차려도 되겠네. 

 

Systainer USA, Custom Systainer³ M 112 (Anthracite + Deep Orange)

원래 Systainer USA에 도달했던 목적인 커스텀 조합으로 주문한 시스테이너. 
몇 가지 되지 않는 조합 파츠지만 이런저런 조합으로 고민을 한참 하다가 결정한 컬러가 바로 앤트러사이트(무연탄) 컬러와 딥 오렌지 조합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생각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화면상에서는 앤트러사이트 컬러가 조금 더 진하고 먹먹한 회색으로 보였는데 실제로 받아보니 살짝 뜬다. 
게다가 오렌지 컬러는 딥 오렌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쨍해서 내가 좋아하는 컬러와는 차이가 좀 있다.
나는 테라코타 레드 컬러에 가까운 진하고 탁한 오렌지 컬러를 좋아하는데 이건 거의 에르메스 오렌지에 가깝다. 

아.. 노란색 바디로 할걸. 

 

외부 크기는 내가 이미 여러 개 가지고 있는 Systainer³ M 112와 똑같다. 

여기서 M은 시스테이너의 표준적인 Medium 사이즈의 폭을 의미하고, 뒤의 숫자 112는 시스테이너의 외부 높이 112mm를 의미한다. 
외부 크기는 396 x 296 x 112mm, 내부 높이는 약 71mm 이고, 무게는 약 1.4kg 으로 최대 적재 중량은 20kg나 된다. 

M 시리즈 가운데는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모델이라 전동공구를 넣기보다는 작은 수공구나 부품을 정리하는 용도로 사용하기 좋은 사이즈. 

 

내부는 역시 비어있다. 

 

Systainer³ M Soft Base Foam (25mm)
Systainer³ M Vaulted Lid Foam

구입할 당시에는 어떤 걸 어떻게 넣을지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바닥에 까는 소프트폼 하나와 뚜껑용 폼, 한 세트만 구입을 해봤다. 
Kaizen Source와 협업으로 제작 판매하는 Kaizen Foam 도 판매하고 있었지만, 그건 나중에 필요하면 주문을 하는 걸로. 

 

뚜껑에 안쪽에 Lid Foam을 붙이면 이런 형태가 된다. 

 

그리고 안쪽은 Gridfinity.

Systainer USA에 주문을 넣어두고 그 이후에 3D 프린터로 여러 가지를 출력하면서 알게 된 Gridfinity 시스템. 
Gridfinity는 미국의 메이커이자 유튜버 Zack Freedman이 2022년 공개한 오픈소스 모듈형 수납 시스템이다. 

기본 개념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42 x 42mm의 격자를 하나의 기본 단위로 사용하고, 그 위에 1×1, 1×2, 2×2 등 다양한 크기로 만들어진 수납함이나 공구 홀더를 자유롭게 배치하는 방식. 높이 역시 7mm 단위를 기본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사람이 설계한 부품이라도 같은 Gridfinity 규격을 따른다면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조합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Gridfinity는 특정 회사가 완제품으로 판매하기 위해 만든 수납 시스템이 아니라, 처음부터 누구나 만들고 수정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공개된 오픈소스 프로젝트라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다. 덕분에 지금은 원작자인 Zack Freedman이 만든 모델을 넘어 전 세계 사용자들이 제작한 수많은 종류의 수납함과 공구 홀더가 공유되고 있다. 

아무래도 3D 프린터를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너무나 반가운 시스템이 아닐 수 없고, 내 성격과도 너무 잘 맞아서 너무나 마음에 든다. 

 

이번에는 Systainer³ M 112의 바닥에 맞춰 Gridfinity Base를 깔고 그 위에 작은 1×1 Bin을 여러 개 배치해 봤다. 
각 Bin 에는 볼트, 너트, 와셔, 베어링 등의 작은 부품들을 분류해서 넣었고 상부에는 별도의 부품명을 출력해 붙였다. 
한 번에 출력해도 좋겠지만 여러 번의 테스트 결과 작은 글씨가 담긴 모델은 별도로 다른 세팅으로 출력하는 것이 결과물의 퀄러티가 훨씬 좋았기 때문에 귀찮음에도 불구하고 전부 따로 출력해 붙이게 되었다. 

 

Gridfinity Base for Systainer³ M (링크)

여러 버전이 있었지만 내가 선택한 모델은 Makerworld의 argoroots님이 제작하신 모델. 
컬러만 바꿔서 출력해 봤는데 너무 딱 잘 맞아서 깜짝 놀랐다. 
물론 기본적인 시스테이너의 크기가 있기 때문에 한 번에 전체를 출력하지는 못하고 4조각으로 나눠 출력한 후 순간접착제로 붙여서 사용 중이다. 

 

Gridfinity 1×1 with Tab & Scoop (링크)

Gridfinity 를 위한 정리함은 정말 그 종류가 너무너무 많아서 뭘 골라서 출력할지 결정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많아도 너무 많으니까 뭐가 좋은 건지 판단도 제대로 안되었기 때문에 일단 평가가 좋은 3-4 가지를 출력해 봤고 그중에서 내 입맛에 맞는 모델로 골랐다. 
역시나 Makerworld의 Lee_337님이 제작하신 모델. 

나는 볼트나 너트, 와셔 같은 작은 부품을 분류하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에 두 가지가 필요했다. 
첫째로는 비슷비슷한 부품들을 한눈에 구분할 수 있게 태그를 달 수 있는 탭이 있었으면 했고, 
또 하나는 작은 부품을 벽으로 굴려서 손에 집기 쉽게 만들어 둔 슬로프(스쿱)가 필요했는데 이 모델이 그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출력을 해보니, 탭 아래쪽으로도 경사를 만들어 두어, 서포트 없이 출력해도 굉장히 깔끔하게 출력이 된다는 추가적인 장점도 있었다. 
제작자가 샘플로 올려둔 대표 이미지에 윗부분 엣지의 컬러를 달리해서 조금 촌스럽게 보였는데, 대표 이미지만 바꾸면 훨씬 반응이 좋았을 것 같다. 
나는 매트한 회색 PLA로 출력을 했는데 그 결과물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사이즈에 맞춰 네이밍 태그만 별도로 모델링 해서 위로는 부품의 사이즈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좁은 공간에 많은 글씨를 써야 해서 폭이 좁은 글씨를 이용해서 0.5mm 씩만 튀어나오게 글씨를 배치했는데, 글씨가 망가지지 않고 깔끔하게 출력되는 최적의 결과를 얻기 위해 꽤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앞쪽에는 비슷한 사이즈로 아이콘을 넣어봤는데, 이미지상으로는 괜찮았는데 출력을 하고 보니 작은 아이콘에서 원과 6각형 등의 구분은 아쉽게도 거의 안되네.. 
그래도 대충은 알아볼 수 있으니 그걸로 만족. 

3D 프린터 출력물에 사용할 황동 인서트까지 분류를 하려니 1×1 80개를 출력해 분류를 했는데도 한참 모자라네.. 
작은 부품들은 핀셋으로 하나하나 집어서 분류를 했는데 마음을 비우는 중이다.. 하며 수련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Systainer, 그리고 Gridfinity. 
규격화하여 정리된다는 점에서 닮아 있는 두 시스템. 
너무나 내 취향에 맞아서 앞으로 이 두 시스템과 엮여서 하고 싶은 게 벌써 너무 많이 떠오른다. 

시스테이너야 이미 수도 없이 가지고 있어서 새삼 특별할 것도 없는 물건이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용도를 정하고 원하는 컬러로 시스테이너로 구성하고, 내부까지 직접 출력한 Gridfinity 아이템으로 채워 넣었다는 점에서 확실히 재미가 느껴진다. 

뭔가 배가 산으로 가려고 짐을 꾸리는 느낌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