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2025년 3월 13일에 공개한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의 시간(Adolescence)‘을 보고 뭔가 기록을 해두고 싶어 남겨보는 포스팅.
소년의 시간은 총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에피소드는 약 1시간 정도의 러닝타임을 갖는다. 각 에피소드마다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이 다른데, 그렇다고 옴니버스 타입의 개별적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얽힌 사람들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구조.
source : netflix
13세 소년 ‘제이미 밀러’가 같은 학교 여학생의 살인 혐의로 체포된 후 이어지는 제이미와 그 주변에 관한 이야기로, 처음에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수사물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 드라마는 범인을 추적하는 스릴러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끔찍한 사건이 주변 인물들에게 어떤 감정을 남기는지를 조용하고 깊게 탐구하는 드라마라 네 편의 에피소드를 보고 있다 보니 어느새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에 나도 모르게 몰입해 숨죽이고 집중하게 되었다.
사실 이렇게 여러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살인 사건 등의 잔인한 소재가 포함된 경우 감정적으로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다행히(?) 살인 사건 자체를 깊게 다루기보다 그 이후의 감정에 집중하는 작품이라 끝까지 몰입해 볼 수 있었고, 결론적으로는 굉장히 좋았다.
주요 출연진
제이미 : 오언 쿠퍼(Owen Cooper)
에디 밀러(제이미 부) : 스티븐 그레이엄(Stephen Graham)
루크 배스컴 경위 : 애슐리 월터스(Ashley Walters)
브리오니 애리스턴 (심리상담사) : 에린 도허티(Erin Doherty)
감독은 영화배우이자 프로듀서인 ‘필립 바랜티니(Philip Barantini)’이며 아빠 ‘에디 밀러’ 역할을 맡은 ‘스티븐 그레이엄(Stephen Graham)’이 각본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 포함)
에피소드 1 (65분) – 사건의 발단
경찰이 들이닥쳐 제이미를 연행하고 구금하는 과정이 실시간으로 전개된다.
덕분에 제이미와 그의 가족들이 느끼는 혼란과 공포가 생생하게 전달되며 인물들의 감정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전개.
에피소드 2 (51분) – 학교에서의 수사
배스컴 경위와 프랭크 경사가 제이미의 학교에서 증거 확보등을 위해 탐문을 진행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학교는 사건과 상관없이 혼돈과 무질서로 가득 차 있고, 아이들은 갈등과 분노 속에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떠들어댄다.
어른들의 단편적인 정보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만의 복잡함이 얽힌 사건임을 깨닫게 되고, 수사는 큰 진전없이 답답함만 커지지만 그 과정에서 배스컴 경위는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할 기회를 맞는다.
에피소드 3 (52분) – 심리 상담
제이미와 심리 상담사 애리스턴이 좁은 공간에서 대화로만 풀어가는 형식의 에피소드.
극 중 가장 긴장감 넘치는 순간들이 이어졌고, 몰입감이 상당했다.
특히 제이미 역을 맡은 아역 배우 오언 쿠퍼(Owen Cooper)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아역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
애리스턴과 제이미의 연기력만으로 한 에피소드를 온전히 이끌어나가는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 장면에서 상담사가 눈물을 흘리며 한숨을 쉬는 모습에서 그제서야 나도 같이 한숨을 쉬게 될 정도.
에피소드 4 (60분) – 가해자 가족의 이야기
가해자 가족, 특히 아버지의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건 이후 가족 전체가 슬픔과 죄책감에 짓눌려 있고 그것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한 채 애써 무던한 일상을 유지하려 하지만 동네 아이들의 장난이 계속되면서 억눌려 있던 감정이 폭발한다.
SNS에서는 여전히 이 가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이웃들은 마치 동물원을 구경하듯 거리를 두며 방관한다.
가족은 과거의 즐거웠던 순간을 억지로 끄집어내 애써 웃어보지만 그 슬픔의 그림자는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자동차에 낙서된 문구를 지워보려 애를 쓰다가 결국엔 페인트를 통째로 부어버리는 장면.
그렇게 대충 덮어버린다고 해서 가려지거나 지워지는 슬픔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씁쓸하면서도 북받치는 장면이었다.
연출 방식
이 드라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한 에피소드를 전부 원테이크로 촬영했다는 점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방식이 익숙해지지 않고 내내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
초반에는 에피소드마다 오직 한 번의 전환만 허용되는 이 방식이 감독의 강한 고집처럼 보이기도 했고 ‘굳이 이렇게 했었어야 할까? 롱테이크로 훨씬 더 효과적이고 훌륭하게 찍은 다른 작품들도 많은데?’ 하는 불만이 있었지만, 에피소드 3을 보고 나서야 이러한 답답함마저도 의도적인 선택일 수 있겠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카메라가 인물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감정선과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 숨소리, 잔대사까지 놓치지 않고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인 기법이었고, 마치 내가 그 인물이 된 것 같은 감정 공유가 가능해지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달까.
어쨌든 마지막까지 보고 나니 연출 방식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배우들과 제작진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2화 마지막에 배스컴 경위가 아들과 식사를 하러 가면서 카메라가 자연스럽게 하늘로 올라가 학교 근처 전경을 보여주다 사건이 벌어진 현장으로 옮겨져 제이미 아빠의 헌화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보면서도 도대체 이 장면은 어떻게 찍었을 까 궁금하던 차에 Netflix UK & Ireland 공식 X계정에서 답을 올려주었다.
궁금한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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