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제목에는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 그냥 요즘 한창 재미 붙여 시간을 보내고 있는 소소한 작업에 대한 짧은 기록을 해보려 한다.

디지털 이미지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픽셀(pixel)’.

요즘에는 레티나(Retina) 디스플레이다 뭐다 하면서 육안으로 픽셀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고해상도 화면에 너무 익숙해져서 인쇄물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고 매끈한 이미지를 디스플레이로 보고 있지만, 예전에는 기술적인 한계로 화면에 큼지막한 픽셀이 도드라져 보이는 게 너무나 당연했다.

나도 워낙 옛날 사람이라 허큘리스(Hercules) 그래픽 카드에 SIMCGA를 실행해서, 320×200픽셀의 CGA 게임을 겨우 단색으로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도 몇몇 게임을 하면서는 ‘그래픽 좋다’라고 느끼기도 했으니까.

지금은 굳이 그런 기술적·환경적 제약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데도 다시 네모난 점으로 그림을 그리고, 일부러 픽셀을 도드라지게 표현하기도 한다.
‘레트로함’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픽셀 아트(pixel art)’라는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겠다.

아날로그 시절부터 초기 디지털 세대를 거쳐 지금까지 고루 발을 걸치고 살아온 나에게 그 픽셀 아트는 왠지 굉장히 취향에 맞는다.

AI가 뚝딱 만들어낸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도 진짜인지 한참 들여다보게 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 생략에 생략을 거치고 꼭 남길 것들만 줄 맞춰 잘 정렬해 둔 이미지라니.

이 매력은 너무나도 내 찰떡 취향.

atelier summer

그렇게 평소 픽셀 아트를 좋아하는 나는 아뜰리에를 설계할 당시부터 지하 주차장 바닥에 픽셀 아트를 해보기로 마음먹었었다.

기본적으로는 제주 갤러리의 주차장 바닥에 썼던 200×200mm 크기의 주차장용 고강도 바닥 타일을 사용하되, 몇 가지 색상의 컬러 타일을 추가해 간단한 이미지들을 바닥에 만들어 꾸며 보기로 했다.

주문하려던 컬러 타일 생산업체에서 소량은 생산하지 않는다고 빠꾸를 먹기도 했고, 원래 진행하려던 주차장 타일 시공업체에서 이런 복잡한 건 못 한다고 발을 빼기도 했다.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지만, 어쨌든 운 좋게 젊고 에너제틱한 타일팀이 섭외되어 아주아주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이미 공사가 다 끝나 깔끔하게 정리되었지만, 공사 중일 때 사진을 몇 장 가져와봤다.

하필 내가 일본에 가 있을 때 이 작업이 잡혀버려서, 혹시나 실수가 생길까 봐 구간별 도안을 컬러로 프린트해 각각의 기둥에 붙여두었다.
번개 마크가 있는 곳은 전기차 충전 위치.

주차장 바닥의 픽셀 작업은 예전에 다 끝냈지만, 벽과 기둥 쪽으로도 그 느낌을 조금 이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게 바로 요즘 하고 있는 이 작업.

원하는 픽셀 아트를 정해둔 크기로 모델링하고, 3D 프린터로 출력해 벽 장식을 만드는 것.

자동으로 필라멘트를 바꿔주는 AMS를 이용해 여러 색을 한 번에 출력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색상별로 따로 뽑아서 끼우는 편이 훨씬 더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느낌. 너무너무 손이 많이 가고 귀찮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색상별로 분리해서 출력하고 있다.

요 며칠은 거의 24시간 내내 돌아가고 있는 내 3D 프린터.

처음에는 윗면을 매끈하게 만드는 다림질 기능까지 사용했는데, 그러면 출력 시간이 오래 걸려도 너무 오래 걸려서 나중에는 그냥 다림질 없이 일반 출력으로 바꿨다.

모델링 자체는 굉장히 간단하다.
사각형 픽셀 모양에 높이를 주고, 모서리를 살짝 깎는 챔퍼(chamfer)를 넣고, 색상별 부품이 끼워지는 곳에 0.2mm씩 여유를 주는 게 거의 전부.

그런데 픽셀 하나의 기본 크기를 16mm로 잡았더니 완성품이 생각보다 커져서, 출력 시간은 보통 한 플레이트당 4~5시간 정도 걸린다.
컬러별로 나눠서 출력하면 캐릭터 하나당 10시간 정도는 잡아야 할 듯.

물론 그냥 평평하게 출력해도 굉장히 예쁘겠지만, 부조(浮彫/relief)처럼 살짝 높낮이를 주는 편이 더 예쁠 것 같아서 캐릭터마다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도록 파츠별 높이를 고민해 모델링해봤다.

이 슈퍼 마리오(Super Mario) 캐릭터는 길이가 약 420mm라서 두 파츠로 나눠 출력한 뒤 순간접착제로 붙였다.

위 사진에서 알 수 있듯 모든 출력물에 잘 보일 수 있도록 검은색 테두리가 있는데, 그 검은색이 전체 부품들을 받치는 트레이 역할을 하게 된다.
위 사진은 접착제로 붙이고 미니 클램프로 임시 고정해둔 모습.
자세히 보면 같은 검은색 부분 안에서도 나름 높낮이를 다르게 준 걸 알 수 있다.

다행히 워낙 다양한 색상의 필라멘트를 미리 구입해두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게임 캐릭터 대부분은 문제없이 출력할 수 있었다.
다만 슈퍼 마리오의 피부색과 신발 색상에 맞는 게 마땅치 않아서, 목분이 첨가된 PLA Wood를 사용했다.

피부에는 PLA Wood Classic Birch(13505), 신발에는 PLA Wood Black Walnut(13107).

색상 때문에 고른 재료였는데, 이상하게 이 두 가지로 출력한 부품은 다른 부품들보다 빡빡하게 들어가서 조금 당황했다.
같은 여유를 줬는데도 재료가 달라서 그런 건지.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르겠다.

일단 지금은 생각하고 있던 캐릭터들은 거의 출력을 마친 상태.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s)나 갤러그(Galaga)의 이미지도 추가로 출력할까 고민하다가, 이미 출력한 녀석들을 먼저 벽에 대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신나서 뽑다 보니 생각보다 종류도 많고 각각의 크기도 커서,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싶은 걱정이 들었다.
아무래도 너무 많으면 또 지저분해질 수 있으니까.

한때 미친 듯이 즐겼던 게임 마인크래프트(Minecraft)를 보면 그 옛날의 픽셀 단위를 입체 공간으로 확장해 커다란 사각형 블럭들을 쌓아서 세상을 만들어 간다.
처음에는 그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라서 가상의 세계 안에서 이것저것 만들어 가며 재미를 느꼈었는데, 세상이 참 재밌어져서, 이제는 개인이 원하는 걸 집에서 바로 뚝딱 출력할 수 있고, 화면 안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만져볼 수 있는 것들로 만들어 갈 수가 있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지금 현실판 마인크래프트를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화면 속에서 보던 그림을 현실의 입체물로 출력해 실제 벽에 하나씩 붙여나가는 이 과정이 늙크크입장에서 너무너무 재밌고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