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에 모으는 것이 많은 내 입장에서, 수집 카테고리의 확장은 그 시작이 굉장히 부담스럽다.

바로 며칠 전 작성한 TONE Factory, Turntable 포스팅(링크)의 시작에 살짝 언급했던 것처럼, LP는 ‘수집’이라고 부르기 뭐 한 정도의 최소한만 사서 가끔 감상하는 정도에서 머무르는 것이 현재의 목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며칠 만에 LP-BOX 구입기를 작성하고 있는 상황이 조금 우습긴 하지만, 그만큼 이 LP-BOX는 LP를 사기 시작하면 반드시 사고 싶었던 아이템 중에 하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sunrise, “COWBOY BEBOP” LP-BOX

‘기동전사 건담(機動戦士ガンダム)’으로 유명한 일본의 대표 애니메이션 제작사 Sunrise, 
지금은 반다이 남코로 예하에 있긴 하지만 한때 작품성 좀 있다.. 하는 애니메이션을 수두룩하게 제작했던 엄청난 회사다. 
그 선라이즈에서 1998년 발표한 ‘와타나베 신이치로(渡辺信一郎)’ 감독의 초 명작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カウボーイビバップ)’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이면서도, 서부극이나 느와르 장르 느낌도, 홍콩 영화의 느낌도 나는 굉장한 수작. 
개인적으로는 역대 애니메이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굉장히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무엇보다 이 애니메이션은 음악이 작품 자체의 일부라고 해도 될 만큼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애니메이션 제목의 “Bebop” 역시 재즈의 한 장르 이름일 정도니 뭐. 

 

그 유명한 ‘칸노 요코(菅野よう子)’가 음악을 담당했고, 
이것저것 다 합치면 10장이 넘는 OST 앨범들이 존재하는데, 이 LP-BOX는 아마도 TV 애니메이션 방영 25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박스세트로, 그중 7개의 주요 OST 타이틀을 그대로 LP로 옮긴 구성이며 총 11장의 LP가 들어있다. 

* Cowboy Bebop O.S.T.1 (2LP)
* Vitaminless
* No Disc O.S.T.2 (2LP)
* Blue O.S.T.3 (2LP)
* Music for Freelance
* Ask DNA
* Future Blues (2LP)

물론 나는 CD로도 모두 소장하고 있는 앨범인데,
LP의 앨범 재킷 역시 CD 재킷의 디자인을 그대로 키워서 제작되었다고 해서 더더욱 마음에 든다. 

 

외부 카톤박스 패키지를 열었더니 안쪽에 안내 쪽지 같은 게 들어있어서 보니 “티셔츠 응모 코드”. 
2024년 1월까지 진행했던 발매 기념 이벤트란다. 

응모는 이미 오래전에 종료되었지만 현재도 일본 아마존이나 여러 판매처에서 계속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극소량 제작된 한정판 같은 건 아닌 모양. 

 

사실 CD 시절부터 닳고 닳도록 들었던 가장 좋아하는 앨범 세 개(O.S.T.1-2-3)만 구입할까 망설이다 결국 이 박스세트로 구입하게 된 계기이기도 한 이 패키지 디자인. 
비비드한 원색의 사각 프레임들을 배치하고, 그 안에 검은색 실루엣으로 주인공들을 각각 담아낸 디자인은 정말 재즈, 액션, 느와르, 팝아트가 뒤섞인 카우보이 비밥의 감성을 제대로 담아낸 디자인인 것 같다.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들이라면 바로 오프닝 영상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두툼한 크라프트지 재질의 패키지 뚜껑을 열면 안쪽에 나란히 놓여있는 LP들을 드디어 만나게 된다. 

 

Cowboy Bebop O.S.T.1

가장 유명한 첫 번째 O.S.T. 앨범. 
“Tank!”가 수록된 앨범으로 빅밴드 재즈를 중심으로 작품의 정체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방송이나 CF 등에도 워낙에나 많이 쓰인 음악들이라, 모르긴 몰라도 이 음악은 내 또래 중에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듯.

 

Vitaminless

본편에서 사용된 곡들 가운데 조금 더 재즈와 블루스 분위기가 강한 곡들을 담고 있다. 
각각의 곡들을 들을 때마다 아직까지도 애니메이션의 장면이 같이 떠오를 정도로 귀에 익숙하다. 

 

No Disc O.S.T.2

앨범 아트에 써있듯 굉장히 다양한 아티스트가 참여한 앨범. 
재즈뿐 아니라 펑크, 블루스, 클래식까지 다양한 장르가 담겨있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은 Gabriela Robin의 Green Bird. 
Gabriela Robin은 누구지? 하고 찾아봤더니 그것도 역시 칸노 요코였던 것을 알고 당황했던 기억. 

 

Blue O.S.T.3

나를 비롯해서 아마도 카우보이 비밥의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지 않을까 싶다. 
Blue의 인상적인 도입부에서 Mai Yamane의 걸걸한 보컬로 이어지는 매력이 굉장한 곡. 
Adieu, Call Me Call Me, Wo Qui Non Coin 같은 곡들이 대표 곡.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이지만 Wo Qui Non Coin는 제목도 그렇고 곡을 들어보면 마치 프랑스어처럼 들리는데 실제로는 프랑스어를 모티브 삼은 가상의 언어라고. 
제목인 Wo Qui Non Coin도 불어 같지만 일본어인 ‘僕の子犬(Boku no koinu/내 강아지)’의 발음을 프랑스어 비슷하게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한다. 

 

Music for Freelance (remixes)

주인공 스파이크의 전용기인 소드피시(Swordfish II / ソードフィッシュII)가 멋지게 그려진 리믹스 앨범. 
원곡을 새로운 스타일로 재해석한 음반이다. 
개인적으로는 원곡을 훨씬 좋아해서 자주 듣지는 않았던 앨범. 

 

Ask DNA

2001년 방영된 극장판 Knockin’ on Heaven’s Door(カウボーイビバップ : 天国の扉 /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 천국의 문)의 싱글 앨범. 
사실 음악은 취향이 아니라 많이 듣지 않았지만, 끝내주는 액션이 인상적이었던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명작 중의 명작이다. 

 

Future Blues

역시나 극장판 Knockin’ on Heaven’s Door의 O.S.T. 
난 데모 버전으로 들어있는 ‘Rain’ 이라는 곡을 가장 좋아한다. 

‘Seatbelts’라는 밴드의 음악으로 전부 꾸며져 있는데, Seatbelts는 칸노 요코가 카우보이 비밥을 위해 결성했다고 하며, 곡마다 참여한 연주자들이 달라지고 재즈 빅밴드 부터 락, 오케스트라까지 자유롭게 넘나드는 폭넓은 음악성을 선보인다. 

 

음질만 놓고 보면 굳이 이걸 LP로 들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CD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스트리밍으로도 언제 어디서나 터치 몇 번이면 훨씬 좋은 음질로 들을 수 있는 시대에 LP라니.. 
그럼에도 이 LP-BOX는 단순히 음악을 듣기 위한 음반이라기보다, 카우보이 비밥이라는 작품 자체를, 그리고 추억을 소장하는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커다란 앨범 재킷도 그 맛을 더 해주는 것 같고.. 

한 장씩 조심조심 꺼내서 턴테이블 위에 올려 바늘을 살포시 내려놓는 그 과정까지도 뭔가 의식처럼 느껴진다. 

지금까지 정말 정말 좋아하는 음반만 사서 최소한만 소장하자..는 기준으로 고른 LP들 가운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생각이 되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