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너무 피규어, 게임 등의 ‘덕후(오타쿠)’ 취미 기록만 포스팅
하는 것 같아서 조금 더 내 본질에 가까운 ‘된장질’쪽으로 포커스를
옮겨보기로 했다.
예전에는 가방, 옷, 신발 이런 걸 사면 전부 사진으로 찍어두고
마음에 드는 건 포스팅도 하고 그랬었는데, 살 때 조금 많이씩 몰아서
사는 편이라.. 어느 순간 너무 쌓이면 귀찮아지기도 하고,
패션 아이템 쪽은 거의 이제 사진 찍는 일 자체를 안 하고 있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구입한 아이템 중에 아주아주 마음에 든다든지
의미가 있는 아이템만 골라서 포스팅해 볼 예정.
지금 올리는 켈리(Kelly) 백은 2012년 사진이다.
(지금 보니 사진이 좀 어두침침한데, 실제론 조금 더 밝은 컬러)
나는 큰 가방을 좋아하는 편이라,
주로 내가 사는 가방은 항상 엄청나게 큰 박스에 담긴다.
내 첫 에르메스 가방이었던 여행용 스티브(Steve)의 박스가
지금까지 가장 컸지만 이 켈리 박스도 만만치 않다.
가방이 크니 박스도 크고, 박스가 크니 파우치도 크다.
“켈리 릴렉스 백 (Kelly Relax Bag)”
1956년 만들어진 켈리 백의 50사이즈 릴렉스 버전.
에르메스 버킨백과 함께 여성들의 로망백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백이지만, 이 정도 크기라면 오히려 남자가 들기에 딱이다!
버클은 팔라듐 도금이라고 하는데 그게 좋은 건지 뭔지는 모르겠다.
팔라듐이라 하면 토니 스타크가 아크 리액터의 촉매로 갈아끼우던
그 금속인데.. 팔라듐 독성 때문에 녹즙 먹다가 나중에 비브라늄으로
바꾸는 그거 아냐?; (아 덕후티 안내기로 했지;;)
여튼 지금은 워낙 많이 들고 다녀서 금속에도 꽤 스크래치가 많이
나있는데, 옛 사진에서 깨끗한 내 가방을 보고 있자니 참 흐뭇해지네.
에르메스 백들이 대부분 그렇듯 묵직한 자물쇠로 가방을 잠글 수
있게 되어있는데, 막상 이 사진 찍을 때 말고는 한 번도 잠가보지
않았던 것 같다.
다들 알겠지만 켈리(Kelly) 백은 영화배우이자 모나코의 왕비였던
그레이스 켈리(Grace Patricia Kelly)에게서 따온 이름이다.
그레이스 켈리가 임신했을 때 자신의 배를 가리기 위해 들고 있던
에르메스 백 (Sac à dépêches)이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게 되자
에르메스가 직접 모나코 왕실의 허락을 받아
‘켈리 백’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바로 이 사진이 켈리 백이라는 이름의 시작이 되는 사진이라고 한다.
위에서도 잠깐 이야기했듯 켈리 백은 버킨(Birkin) 백과 함께
에르메스의 대표적인 가방인 만큼 제작 과정도 다른 가방들과는
달리 차별화된 공정을 거쳐 완성된다.
바로 이 사진이 켈리 릴렉스 백 가죽의 유연함이 아주 잘 표현된
사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에르메스의 가방은 가죽의 종류도 참 많고, 각각의 가죽마다 고유의
특성이 있다. 타조(Ostrich) 가죽이나 악어(Crocodile) 가죽 안에서도
등급과 종류가 또 나눠지지만 그건 별로 관심 없고,
보통 많이들 들고 볼 수 있는 토고(Togo), 끌라망스(Clemence),
엡송(Epsom) 등을 비롯해 그 종류가 엄청나게 많은데,
이 가방은 Hermes Veau Sikkim Leather 이다.
Veau Sikkim Leather는 가방으로 만들어지는 가죽 중에 가장
부드럽다고 할 수 있는데 보통 그 부드러움을 버터에 비유한다고.
컬러는 Gris Tourterelle.
프랑스어 사전에서 검색하니 ‘(멧비둘기의 깃털 색처럼) 연한 회색’.
(멧 비둘기는 뭐니?;;)
가죽이 워낙 부드럽다 보니 가방을 세워두면 축축 처져서 세워두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아무래도 가방이 큰 편이다 보니 바닥 쪽엔 5개의 금속 다리가 있다.
가방의 공식적인 사이즈는 19.55″ L x 8.25″ W x 13″ H.
몇 년을 사용 후, 지금의 켈리에서 가장 낡은(?) 부분은 바로 이 부분.
여기저기 치이면서 코너 쪽 가죽이 낡아버렸지만
기본적으로 구깃한 가방이라서 나름 그것도 어울린다.
이렇게 축 늘어진 형태의 Kelly Relax 말고도,
기본 Kelly Bag,
작고 가로로 길쭉한 클러치 스타일의 Kelly Lounge,
작은 손가방 형태의 Kelly Mini Pochette,
스트랩으로 매듭을 감는 형태의 Kelly Flat 등
인기가 많은 만큼 엄청난 패밀리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기본 켈리가 가장 구하기 어렵고, 사고 싶다고 살 수는 없지만.
유일하게 단단한 손잡이 부분도 어깨에 막 메고 다녔더니
지금은 이리저리 가죽이 좀 까졌음.
지금은 가방도 그때보다 훨씬 더 많고 심지어 버킨의 엄마라 불리는
HAC(Haut à Courroies) 50사이즈도 샀지만 지금까지 구입한
가방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가방은 역시 이 녀석이다.
spargo
멋진 포스팅 감사합니다. 좋은 글과 좋은 내용에 흠뻑 젖어들다보면, 참 좋은데… 문제는 저에게도 그분이 오신다는 것이죠.
켈리가 너무너무 가지고 싶었지만..
가격도 높고, 제게는 에르메스라는, 특히 여성들이 많이 든다는 점이 부담스러워(저는 남자 ^^)..
다른 가방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저도 언젠가는 꼭 가지고 싶네요.
vana
관심갖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에르메스라는 브랜드에도 남자를 위한 가방이 꽤 많이 나옵니다.
물론 남녀구분없이 들 수 있는 가방도 많구요.
에르메스의 큰 가죽재질 가방의 경우에는 남자들에게나 어울리는 무게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특히 남자한테 더 인기가 있기도 합니다.
물론 저도 남자용으로 나오는 톰포드(TOM FORD)나 지방시(GIVENCHY) 등의 가방을 더 자주 드는 편입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