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은 나의 힘.
2000년 초반 LOMO LC-A라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만들었던 개인 홈페이지를 지금까지 진득허니 이어오고 있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밴드 이름을 따서 ‘nirvana’라는 닉네임을 사용했었는데, 같이 사진 찍던 동생들이 항상 바나형, 바나오빠 부르다 보니 자연스레 앞쪽의 nir이 탈락하고 vana만 남았다.
글 몇 자 없이 사진만 툭툭 올리던 첫 홈페이지는 데이터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
페인터라는 프로그램으로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을 직접 그려서 올렸던 기억이다.
당시에는 싸이월드가 전국적으로 붐이었는데, 반발심이었는지 뭔지 싸이월드는 겨우 유지만 하고 주로 직접 만든 홈페이지에 사진을 올리곤 했다.

서툰 실력의 HTML과 플래시로 제작했었던 두 번째 홈페이지.
스트릿패션에 심취해서 그랬었는지 여기저기 윈드밀에 프리즈에 아주 난리가 났네.
당시에는 로모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로모그래퍼(lomographer)라고 불렀는데, 그 사람들끼리 각자의 홈페이지를 타고 다니도록 하는 로모 웹링(LOMO Webring) 배너를 달고, 서로의 홈페이지에 가서 댓글을 달며 친목을 다지는 것이 유행이었다.
오랜만에 이 포스팅을 작성하려고 예전 홈페이지 리소스를 이용해 서버에 띄워봤더니,
아.. 도저히 저 때의 감성을 감당할 수가 없네.

당시 가장 흔하게 사용되던 ‘제로보드(ZeroBoard)’라는 웹게시판 시스템이 네이버에 인수되고, 익스프레스엔진(XpressEngine)이라는 시스템이 발표되면서 발 빠르게 갈아타 제작했던 개인 홈페이지.
vana.com 도메인을 사고 싶었지만 네 글자짜리 도메인은 그때도 이미 늦은 관계로, 대한민국 국가 코드 도메인을 달아 vana.kr로 옮겨탔다.
그전까지는 내가 찍은 사진을 온라인에 전시하는 온라인 사진전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때부터는 개인적인 잡다한 기록을 남기는 블로그(web+log)의 개념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그 형태가 발전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계획은 훨씬 이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는 2026년 9월부터 준비해서 바로 오늘까지 vana+ 블로그의 리뉴얼 업데이트가 진행됐다.
눈에 띄는 큰 변화는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눈치채지 못했을 이번 업데이트는 블로그의 핵심 기능을 중심으로 테마와 구성 요소를 전반적으로 재정비하는 작업이었다.
오랜 기간 운영하면서 덕지덕지 기능을 붙이느라 ‘테세우스의 배’가 되어버린 낡고 오래된 내 테마. 그 테마에 의존하던 부분들을 과감히 걷어내고, 꼭 필요한 기능만 남긴 새로운 구조로 완전히 개편했다. 보이는 건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르지만, 안쪽은 거의 싹 다 새로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여러 플러그인에 나뉘어 있던 잡다한 기능들도 전부 다시 검토해서 지저분하고 비효율적인 기능은 다 버리고, 남겨야 할 부분은 좀 더 가볍고 독립적인 형태로 정리했다.
기존의 글과 댓글, 구조 등을 훼손하지 않고 블로그 서비스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업데이트하기 위해 로컬 서버에서 수많은 테스트를 거치며 부단히 애를 썼다. 그 결과 단 몇 초 동안 데이터를 갈아치우는 것으로 업데이트를 깔끔히 마칠 수 있었고, 성능 개선을 위한 추가적인 작업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기록의 연속성.
앞서 떠들었던 2000년 초반 개인 홈페이지로부터의 명맥은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지만, 아무래도 웹 서비스의 유행과 기술 변화에 따라 지난 글들을 그대로 가지고 끌고 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중간중간 기록이 끊겨버렸던 점이 못내 아쉬웠다.
오래된 글은 오래된 글대로 당시의 문장과 사진뿐 아니라 그 시절의 기억들까지 함께 품고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새 형식에 맞춰 다시 만드는 대신, 원래의 내용과 분위기를 가능한 한 보존하면서 지금의 브라우저와 기기에서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쪽을 택했다.
덕분에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까지 하나하나 확인해야 했고, 예상보다 훨씬 큰 작업이 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지속적으로 새로운 글을 쓰고 블로그를 계속 운영하기에는 이전보다 훨씬 단순하고 관리하기 좋은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믿고 있다.
당장 5년 뒤만 해도 이렇게 텍스트로 무언가를 남겨놓는 일이 지속될 수 있을지 예상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변해가는 요즘 세상이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했던 것들을, 기억하고 싶었던 것들을 이곳에 계속 남겨두고 돌아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