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이런 옷을 사려는 게 아니었다. 
제주 현장에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부피가 너무 크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옷을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알아보던 중이었는데, 
내 주변에서 이런 쓸데없이 잡다한 지식의 저 끝에 가있는 친구에게 자문을 구했다가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주로 누군가에게 뽐뿌를 하는 입장인데 뽐뿌를 제대로 당해버려서 조금 억울하긴 하지만 어쨌든 꽤 재밌는 시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옷이나 패션 쪽에 꽤 관심이 많은 편이었지만 얼마 전까지 나에게 옷을 선택함에 있어서의 조건은 그저 예쁘고 취향에 맞는, 좋은 소재의 그것.
그 이외에 또 뭔가 있다면, 좋아하는 브랜드나 디자이너의 제품일 것.. 
고작 그 정도였던 것 같다.

테크웨어(Tech+Wear).

사실 아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옷이란 건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해주는 역할이 가장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는 환경적 요인에 편차가 심하지 않고 도시화되며 외부로부터의 ‘보호’보다는 심미적 요인이 더 중요하게 자리 잡아버렸고 
어느 순간 이후로는 대부분의 옷들이 기초적인 보호 기능은 하고 있다 보니 일반 소비자들은 신경도 안 쓰는 상태가 된 것 같다.

극지방 등에서의 연구활동을 위한 장비,
혹은 산악활동이나 스노보드, 스키 같은 스포츠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 
또, 전문적인 운동선수들을 위해 개발되던 다양한 기술들이 점점 일반인들의 옷에도 접목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처음 추천받은 브랜드들은 아래와 같다. 

ACRONYM (아크로님)
Arc’teryx Veilance (아크테릭스 베일런스)
Stone Island Shadow Project (스톤 아일랜드 쉐도우 프로젝트)
11 by Boris Bidjan Saberi (11 바이 보리스 비잔 사베리)
Descente Allterrain (데상트 얼터레인)

그렇게 추천을 받고 여러 정보를 검색해보니, 답은 정해져있었다.
바로 ACRONYM.

 

내가 구입한 제품이 바로 이 제품.
웬 삭막하게 생긴 사람이 뚱뚱해 보이는 재킷을 입고 서있어서 처음에는 좀 당황했었는데,
알고 보니 저 사람이 아크로님 브랜드를 만든 에롤슨 휴(Errolson Hugh) 라고.

현재는 독일의 베를린에 본진을 두고 있는 에롤슨 휴는 1982년 캐나다의 에드먼튼(Edmonton)에서 태어났다.
에드먼튼이 굉장히 추운 지역이라는데 그런 성장환경이 아무래도 지금의 아크로님을 만드는데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아내인 Michaela Sachenbacher와 1994년 ACRONYM을 설립했고 지금은 독보적으로 테크웨어계를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지금은 손을 뗐지만 Nike ACG Line을 맡아 디자인했으며,
Stone Island Shadow Project 역시 에롤슨 휴가 총괄하고 있는 고가의 테크웨어 라인.

혹독한 환경에서도 착용자의 몸을 보호함과 동시에 평상시에도 입을 수 있을 정도의 활동성을 보장하는 옷.
기본적인 보온은 물론 방수, 방풍, 속건 등의 기능들도 갖추고 나름의 스타일도 만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을지는 따로 알아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위 사진에서 보다시피 등 쪽으로 나와있는 밴드들이 그저 멋지라고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손쉽게 벗어서 등에 걸고 다닐 수 있게 한다는, 어찌 보면 군용 제품의 기능들을 보는 느낌이다.
JacketSling 이라는 기능.

내가 실제로 저러고 다닐 용기는 없지만.

 

국내에서 살 수 있는 곳이 전혀 없어서 찾다 찾다가 Hypebeast의 쇼핑몰인 HBX에서 발견,
마지막으로 딱 한 벌 남은 제품을 구입했다.

가격만 놓고 보면 처음 목적과는 달리 공사현장에 입고 다닐 수 있는 애는 아니지만 어쨌든.. 관심이 생긴 이상 일단 한 벌 사보고 후회하자.

 

ACR-FW-1819
J46-FO
2L Gore-Tex Infinium™ Climashield® Coat

ACRONYM의 2018-2019 F/W 제품인 J46-FO 라는 이야기겠지.
본사가 독일이라 그런지 ACHTUNG 이라고 쓰여진 주의사항이 별도로 한 장 더 들어있다.

 

사진상으로는 마치 엄청나게 무거운 인조가죽 제품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받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재킷이 고작 644g.

무슨 유니클로의 울트라 라이트 다운 제품처럼 (부피에 비하면 오히려 더 가벼운 느낌) 솜털같이 가볍다.

‘아차.. 따뜻하기는 글렀구나’

라는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치며..
아 내가 뽐뿌에 낚여서 250만 원짜리 유니클로 울트라 라이트를 샀다는 좌절감에 빠졌다.

 

단추부터 2중 지퍼까지 뭔가 2중, 3중으로 여며진 지퍼를 열고 보니 안쪽도 역시 바스락바스락거리며 따뜻하기는 틀려 보인다.
상단의 지퍼는 망가진 것처럼 아랫부분이 떨어져 있고.
(나중에 알고 보니 목 부분의 보온을 위해 원래 그렇게 디자인된 것)

 

등 바깥쪽에 달아서 등에 메고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밴드.
이게 바로 재킷슬링(JacketSling) 이라고 부르는 기술인가 보다.

 

해당 옷 사이즈에 펀칭을 해서 표시한 점이 재밌다.
목 부분은 안쪽이 누빔 형태로 마감되어 있는데 그 뒤쪽으로 모자가 접혀 수납된다.

 

촌스럽게도 처음 보고 깜짝 놀란 지퍼.
지퍼를 닫으면 앞쪽을 덮고 있는 고무(?) 같은 재질이 완전히 밀폐를 시켜준다.
이렇게 닫으면 아마 방수도 되는 모양이다.
우와 이렇게 잘 맞아떨어질 수가..

 

GORE-TEX Infinium™ Product Technology shell fabric
61% ePTFE
39% Polyamide

CLIMASHIELD® continuous filament insulation
100% Polyester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Gore-tex 라미네이트라는 Gore-tex Infinium은 극도로 낮은 물 흡수력과 부드러움을 자랑하는 직물 기술.

 

손목 부위는 대각선으로 위치한 벨크로를 통해 단단히 조일 수 있다.
대각선으로 해둔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Storm Hood 라고 부르는 모자.
뒤쪽에 조임끈이 달려 이름처럼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모자를 쓰고 조이면 완벽하게 막아줄 수 있을 것 같다.

 

목 부분에 벨크로로 달린 ACRNM 로고 테이프.

왜 저걸 벨크로로 달아놨을까 했는데 안쪽 주머니에 들어있는 같은 사이즈의 로고 없는 테이프가 추가로 들어있어 조금 정보를 찾아보니
ForceLock 이라고 불리는 독자 기술로 에어팟 등을 붙일 수 있는 기능이 있단다.
(왜때문이지??!)

어쨌든 그렇게 겉으로 보기엔 허접하지만 그 안에는 뭔가 대단한 기술이 가득한 것 같은 이 옷을 입고 오늘 하루 종일 바깥을 돌아다니다 왔는데..
헐!!
대박, 뭐지?

왜 따뜻한 거지? 구스다운도 아니고 캐시미어도 아닌 것이?
슈이가 옆에서 자꾸 그냥 기분이 그런 거 아니냐고 하는데.. 뭐 내가 보기에도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여튼 하루 입은 경험 가지고 이게 최고다 뭐다 이야기하긴 뭐 하지만.. 어쨌든 오늘의 착용 후기는 대만족.

슈이도 비슷한 걸 사주려고 아무리 찾아도 여성용 테크웨어는 찾을 수가 없네..
여자는 추울 때 외부 활동을 안 하는 것도 아닐 테고..
Descente Allterrain 에서 여성용이 나오긴 하는데.. 그냥 여성용이라고 써놓기만 했고 사이즈만 다른 느낌?

 

내가 구입한 이 재킷을 여자도 그냥 입네.
같은 스타일로.

슈이 보여줬더니 싫단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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